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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깊은물 (jisook0220@paran.com)
▽ 구분: 영화 ▽ 2004/10/18(월) ▽ 조회: 3339 | |
 이퀼리브리엄 * 감독 : 커트위머 * 출연 : 크리스찬 베일, 에밀리 왓슨 * 줄거리 : 3차 대전이 발발하고 살아남은 인류는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집단을 구성하여 ‘총사령관’이라 불리는 독재자의 통치하에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를 만든다. 모든 죄와 전쟁의 근원은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지어 감정을 억제하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의무적으로 투여하고 이를 어긴 자는 심판을 받는다. 한편, ‘리브리아’에서 철저히 전사로 양성된 특수요원들은 ‘프로지움’의 투약을 거부하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반역자들을 제거하며, 책, 예술, 음악...등에 관련된 모든 금지자료들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존 프레스턴’은 정부 최고의 요원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투약을 중단하고 서서히 통제됐던 감정을 경험하게 되어 반란군 편에 서게 된다. * 영화소감 : 미국 개봉당시 흥행에 철저히 실패했다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열풍이 불었던 이 영화.... 를 보고 난 후 하도 아쉬워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실패 한 이유는 당시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던 미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이며, 백악관에서 행해지는 기도회 등, 부시의 독재적인 체제에 대해 도전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한 구석에서 조용히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의 허탈감이 컸습니다. 외견상 아무래도 매트릭스의 아류작이라는 누명은 벗을 수 없을 겝니다. 구성이 매우 허술하고, 영화 저변에 깐 사상도 일관성이 없고 그저 여기저기서 참조한 것이 너무 많아서 조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고전적인 SF적 요소에,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 조지 오웰의 <1984>, 북한식 공산주의의 감시체제.. 일본식 애니메이션에 바탕을 둔 스토리..... 이렇게 혹평을 하면서도 굳이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통제된 인간의 감정을 다룬다는 영화의 소재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한 소재의 영화를 제작비를 정말 조금 들여서 조잡하게 찍으니 많이 속상했지요. 하지만 진흙탕에서도 연꽃은 피니까, 꿈보다 해몽이 좋다니까 우리는 이 영화속에서 진주를 캐내봅시다. 우선 액션에서 있어서 그래픽을 상당수 배제한 극히 절제된 액션, 또 ‘무기’를 사용해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액션을 보여줬다는 네티즌들의 평이 많습니다. 특히 마지막 총사령관과의 대결은 정말 멋집니다. 홍콩 감독 오우삼이 ‘영웅본색’ 시리즈에서 권총을 칼처럼 사용하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이 영화에서 총을 쏘고 손으로 쳐내며 무술을 하는 액션은 이색적이었습니다. 사실 출연진들의 무술 솜씨가 조작을 절제할 만큼 실력 있습니다. ‘도(절대 칼이 아니랍니다)’를 사용했던 장면도 인상적이지요. 하여튼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력은 영화에 있어서 멋진 고군분투였습니다. 3차대전 후 전쟁과 싸움, 고통의 원인이 느낌 때문이라고 판단한 인류는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약물로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주인공이 투약을 중지하고 점차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생애 처음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개인적으로 이때 사용된 음악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감옥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오페라 음반을 틀었을 때 죄수들 모두 얼어붙은 채 음악에 빨려들던 장면이 참 아쉬웠지요....) 아침에 일어나 창문에 비치는 햇살을 보고 놀라는 모습.... 공공건물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장갑을 벗고 난간의 감촉을 느껴보는 장면과 한 여자 반란군을 거칠게 거울 앞에 세우며 “자신의 꼴을 보라‘고 외치던 주인공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 외면하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가슴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이퀼리브리엄은 절제되고, 억제되고 통제됨에서 나오는 평정, 평화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모든 고통은 감정을 느끼는 데서 오기 때문에 이 감정을 통제하는 것으로 이르는 고요함이지요. 진정한 평화, 안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발상입니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주인공을 향해 반란군들이 하는 질문입니다. 주인공이 던지는 느낌언어에 대해 “그 뜻이 뭔지나 아냐?”고 묻는 그것이지요.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자주 쓰는 외롭다든가, 힘들다든가, 멋있다, 좋다,,,, 등의 느낌언어 말입니다. 일상적으로 툭하고 내뱉지만 말하는 순간 그 단어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주인공처럼, 어떤 어떤 순간에는 모두들 흔히 쓰는 용어를 그저 말버릇으로 따라 쓰는 것이지요. 아무 감정없이 습관적으로 애도의 말을 전할 때처럼 말입니다. 참 멋지다는 말을 하며 그 느낌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섬뜩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층 더 나아가 느낌 언어의 폭을 넓혀줍니다. 두 번째 질문이 바로 그것인데 주인공이 ‘그 친구가’라는 말을 하자 여자 반란군이 묻습니다. 친구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나 있냐고... 우리가 쓰는 많은 명사에도 느낌은 붙게 마련이지요. 물론 그 느낌이란 것이 천차만별의 개인적임을 뜻하기도 하고 때론 일괄적으로 통틀어 붙은 어떤 느낌일 수도 있지만 각설하고 그런 복잡미묘한 느낌과 뗄 수 없는 친구의 뜻을 알기나 하고 사용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느껴 본적이 있는지... 영화에서는 눈에 보이게 강제적으로 느낌을 통제받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전혀 억압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받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깨어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단어에 느낌이 붙어있는다는 것은 이처럼 아주 상반된 결과를 내어 줍니다. ‘부도’라는 단어에 98%의 사람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똑같은 실패감을 받아들입니다. 통제 받고 있지요. 물론 ‘고구마’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훈훈함을 통제받습니다. 그러나 비참할 것도 통탄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 통제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반란군들은 숨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투약을 중지한 것에서 오는 느낌을 선택합니다.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자가 사형에 처해질 때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느끼는 모습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대가를 치루어야만 하는 느낌이지만 그것 때문에 삶이 의미있음을 되새겨볼만한 좋은 소재의 영화입니다. 물이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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