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chosun 2002/3/2(토) 10:13 (MSIE6.0,Windows98) 134.95.38.124 1024x768

[류근일칼럼] 두 敎授의 ‘告解’  01 March 2002 최근 우리 지식인 사회에는 두 가지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하나는 진주교육대학 이지호 교수의 경우이고 또 하나는 경남대학 정성기 교수의 경우다. 이지호 교수는 256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자 그들 모두에게 F학점을 주었다. 곤란해진 학교당국은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지호 교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는 소신으로 학교당국에 맞서 교육부에 ‘교권침해’진정서를 냈다. 정성기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80년대 이론’이 잘못됐음을 ‘고백성사’하면서 “학생들에게 세상을 잘못보게 하고 오도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토로했다. “세상을 잘못보게 한 …”이라고 한 것은 우리사회를 ‘종속적 독점자본주의 체제’라고 했던 당시의 마르크스적 사회구성체론을 말한다. 한국사회는 그런 체제 때문에 갈수록 나빠진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와서 정작 망한 것은 한국자본주의가 아니라 소련 공산주의였다. 그럼에도 그런 주장을 하던 지식인들은 자신의 ‘잘못보았음’을 고백하지 않은 채 그냥 어물어물 넘어갔다. 이에 비한다면 정성기 교수는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너무나 정직했다. 이 두 사례는 오늘의 우리 척박한 지식인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문제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물론 F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다. 중등교사 자격증소지자들을 하루아침에 초등교사로 내몰았으니 그 학생들이 왜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지호 교수는 다만 그와는 다른차원에서 다른 중요한 원칙 하나를 지키고자 했을 따름이다. 정성기 교수의 경우도, 그렇게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은 지식인들 가운데도 나무랄 데 없는 인사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교수와 정 교수가 공통되게 제기한 화두만은 우리 지식인 사회의 건강한 장래를 위해서도 충분히 논의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생각할 것은 “지식인은 어디까지나 ‘개체(個體)로서의’ 독립적인 양심에서 말해야지 집단이나 패거리의 대변인처럼 말해서야 되겠느냐”하는 화두다. 우리 지식인들은 각자 자기생각이 다 없을 리 없을 터인데도 근래에 와선 시류와 패션에 맞춰 “나도 …”하거나, 어쩐지 주눅이 들어있거나,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는 온통 집단주의의 획일화된 함성이요 패거리의 구호들이다. 이지호 ·정성기 교수의 홀로서기는 그래서 돋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개인의 양심 ’들이 그런 용기있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어서 생각할 것은 지식인 사회에도 현 시국 특유의 포퓰리즘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청아한 학문적 담론보다는 막가는 육두문자와 매도의 언어들이 판치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다. 그래서 정 교수는 “편가르기가 심각 …그 과정에서 학문하는 사람 스스로 인간성이 황폐화됐다”고 개탄하지 않았을까? 지식인들이 앞장서 지역 ·계층 갈등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제보다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엘리트와 대중을 막론한 문화적 인간적 퀄리티(質)의 총체적 천격화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짜 위기증상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우리 지식인 사회도 이제는 그 누구인가에게 빚을 졌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그들이 분명한 잘못을 저질러도 할 말을 접어두는 관행을 멈춰야 하겠다. 독재시대의 수난자들을 정중히 존중해주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식인 사회의 건전한 비판의 예외지대에 머무를 수 있는 면책특권은 종료됐다고 보아야 한다. “의로운 동기의 행동이기에, 의로운 취지의 이론이기에, 설령 그것이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더라도 비판해선 안 된다. 비판하면 적(敵)의 편을 드는 것이다 ”라고 하는 율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식인 사회는 세(勢)몰이 판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할 것이다. 스피노자 같은 고독한 지식인상은 정말 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지성풍토에 새로운 ‘열림 ’이 있기를 대망해본다. ( 논설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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