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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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7(일)
죽음의 아픔을 가지고 가기  
죽음의 아픔을 가지고 가기 : Taking the Sting out of Death

죽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우리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 머물러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만, 장차 무엇을 가질 것인가는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내세의 가장 매력적인 이미지마저도 죽음의 공포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가 어려울 때,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도 생명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아픔을 가져가기 위하여, 그리고 죽음은 우리가 마음 깊이 소망하는 것이 충족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차 깨닫도록 돕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것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깊은산 생각 ===============

지금 있는 곳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것, 안전과 안일의 축구는 죽음의 아픔입니다.
그것이 설사 힘들고 어렵고 아프더라도 거기서 빠져 나와 달리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의리라는 핑계로 만들어가는 아집입니다.
변화를 원치 않는, 두려워하는 원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죽음의 아픔을 가져가기 위해 오셨다. - 과연 그렇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세계의 가장 큰 축제요, 명절입니다.
죽음을 넘어설 수 있음, 아니 끝이 아니고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의 메시지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의 ‘생각’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없음을 알 때 남은 것은 부활과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서 그 길을 여시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십니다.
아버지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간다.
온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웃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도 그렇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의 비유나, 에덴에서 나갔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죽음 앞에서 감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이 시작됩니다.

지금 내가 겪는 불안, 고통, 한숨, 원망, 답답함.... 그런 느낌이 오게 하는 일들까지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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