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 2001/10/9(화) 15:32 조회수: 2727

봄날은 간다 : 나와의 아티스트 데이트  참 오랜만에 여운이 있는 한국영화였습니다. 누구나에게 있는 그런 사랑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참 아름답게 영상화하고, 선율로 효현하였습니다. 또, 참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는데, 내내 기쁘고, 슬프고, 아련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 혼자서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홀로 나와의 데이트를 즐겼지요. 그렇게 나의 봄날을 돌아보며, 많이 슬펐고, 많이 우울했고, 많이 고독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그 기운에 가만히 홀로 있어 봅니다. 고독 속에 맞아본 가을이 얼마만인지 모릅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고 하지요? 영혼의 양식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loneliness)이 되게 내버려두느냐, 또는 그것이 우리를 고독(solitude)으로 인도하도록 허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음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독은 평화스러운 일입니다. 혼자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남에게 매달리게 하고,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존재의 독특성을 존경하게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내게 합니다.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지 않게 하고 고독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은 평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는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어떻게 기도할 것인 지, 그리고 언제 조언을 구할 것인지에 관하여 의식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고독을 찾게 될 것입니다. 깨어 있음으로 홀로 있음을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으로 안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독은 그렇게 잠시 물러남의 시간입니다. 잠시 물러나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아내가 수련회들어가고, 유학도 잠시 접고 이제 무엇을 할지 기다리는 시간에 홀로 있음을 그대로 만끽하여 보았습니다. 영성수련의 첫 원리가 '우연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뜻과 음성,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나요. 그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알아차려가는 것이 삶의 예술인 것 같습니다. 그저께, 지난 목요일 그렇게 나와 데이트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아티스트 데이트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감정, 내 상태, 내 욕구에 그대로 충실해 보았습니다. 돌아보니 참 오랫동안 나하고 만나 테이트를 한적이 없었네요. 영화 한편도 제대로 못보고 내 감정, 내 느낌을 그대로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늘 내가 배려하고, 내가 신경쓰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며 지내왔으니까요. 일상의 모든 것을 다 접고, 시내에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혼자 걸어보고, 혼자 바람 맞어보고, 혼자 영화도 보고, 그렇게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 보았습니다. 아내가 집에 있으면 감히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지죠.^^ 어떤 간 큰 남자가..... 전날, 미용실 가서 머리도 단정히 자르고, 만나볼 친구들을 손에도 꼽아보고, 영화 개봉관들을 찾아서 시간과 장소도 알아놓고 그랬습니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그렇게 설레이는 시간이었지요. 그렇게 설레본적이 참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아, 나도 이런 마음으로 아직도 설렐 수 있구나, 놀랐지요. 산에 가는 설레임, 수련회를 기다리는 설레임, 설교를 기다리고, 교회를 기다리는 그런 설레임과는 또 다른 설레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한결이를 할머니께 맡겨두고 비오는 거리를 우산 받쳐들고 나섰습니다. 운전하고 다니기에 익숙해 있어서 걷는 것을 귀찮아 했었는데, 비오는 날 우선 받쳐들고 전철까지 걸어보니 느낌이 새로왔습니다. 여유롭고, 고즈넉하고.... 거리에서는 연휴 다음날 그렇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 풀향 그렇게 하루를 혼자 걸어보고, 혼자 전철 타보고, 혼자 바람 맞아보고, 혼자 울어보고, 혼자 웃어 본 하루였습니다. 먼저, 동대입구에 가서 동국대에서 사서 일을 하는 후배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인생상담을 하면서 점심 진지를 했습니다. 동대 앞에 '풀향'이라는 곳인데, 전통 사찰 음식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분위기 있고, 음식 맛 깔끔하고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결혼이 늦은 후배는 선을 본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는 가족을 위해 결혼할 거라고 하더군요. 자기는 어쩧든 좋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할 거라고요. 근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제가 그랬지요. "잘 될 리~~가 없다....."^^('리'에 악센트!!!) 그러면서 결혼은 내가 나되는데 가장 소중한 계기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부부관계처럼 수련하기에 좋은 장이 없다는 것이지요. 부부관계에 모든 관계가 다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적나라한 모든 치부까지 다 보여지는게 부부관계입니다. 그리고 가족이지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을 모르는 것이고, 아이를 낳아보지 않으면 또 그 반을 모르고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런 사람을 만나지 선을 보아도 잘될 리가 없습니다. 그쵸? ^.* 젊은 나이에 사랑도 해보지 않고 결혼하려하고, 그것도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적당히 하는 거라니 말도 않되는 이야기죠. '나'부터 만나고, 내 안에 사랑이 있음을 보고, 그런 행복한 기운으로 살아갈 때, 그렇게 행복하고 알음다운 사람을 만나서 내가 참 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산 증인임다...... 결혼해서 사람 많이 되었지요. 뭐 그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오랜만에 속깊은 대화를 후배와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긋히 동국대 교정을 산책하고, 혼자 커피도 마셔보고, 비도 맞아보고, 바람도 맞아보고, 우산도 써보고 그랬습니다. 참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나와 첫 데이트였습니다. 2.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그래요. 그렇게 가네요. 세월이, 인생이..... 그 느낌 아세요? 혼자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그 감정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환희와 벅참....... 그런 나의 봄날, 나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영화였습니다. 봄날은 간다.... 너무 아프고 기가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말라버리고, 슬픔조차 접촉이 되지를 않더군요. 이미 지나간 일, 다 정리된 그것으로 마음에 담았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내 가슴에 파뭍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저 영화와 함께 울어버렸으면 속이 시원했을텐데, 다시 떠오르는 그 느낌은 가슴 아프게 도 '분노'였습니다. 누구와 함께 영화를 보지 않은게 어쩌면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랬다면 정리되지 못한 내 마음을 들킬 것이 두려웠고, 내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보듬어 안아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봄날은 간다.. 혼자 보아야 좋을 영화입니다. 특히 남자들이...... (1)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사랑 한 사람을 사랑했네(이정하)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 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을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그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불같은 사랑이었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짝사랑해 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사랑했는데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내 마음의 소중한 보석으로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지요. 그것으로 그저 좋았습니다. 그것으로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같은 벅참이 있었습니다. 말한마디, 눈빛 한번 마주침, 스치는 손길의 아득함....... 그렇게 미치도록 사랑했는데, 떠나는 그 길을 막지 못했고, 난 또 그 슬픔에 빠져 세상을 다 살았습니다. 아니, 세상살이를 접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한 때는 세상이 변하기 전에, 조국이 통일되기 전에는 연애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애인처럼 사랑하기 전에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고, 사치이며, 개인주의, 이기주의, 잘못된 사랑이라 여겼었습니다. 또 그렇게 살았지요. 내 마음에 품은 한 사랑을 꼭꼭 숨겨두고 감추어둔 채......... 하루 밤이 지나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매일 살았고, 그렇게 날밤을 새워도 그것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늘 삶에 놀람과 감격이 있었고, 그래서 살아있음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던 시절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그래서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만들어 놓은 또 다른 나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싸울 대상이 없었고, 생명처럼 여겼던 동지들, 친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떠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었지요. 세상이 바뀌니 그것으로 좋아야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 허무, 절망을 안고 군입대를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내 가슴속엔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었지요. 대낮에도 꺼지지 않았고, 내 삶의 중심에서 골목길까지 훤히 비추는. 어떤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내 심장의 피로 불 밝히는 때도 있었지요. 그렇게 군대 3년을 마치고 학교에 복학을 했는데, 10년 가까이 가슴에만 담아두고 짝사랑하던 그녀가 같은 학교에 입학해서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 하지만, 난 그녀와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내내 피해 다녔습니다. 그녀를 만나는 것에 대한 죄의식과 비참함에, 또 얼굴을 맞대고는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밥을 잘 먹는 것을 알며 그 식당은 피해서 갔고요. 수업도 같이 있을까봐 돌아 돌았구요. 어느 벤치에, 도서관 어느 열람실에 있는 것을 알면 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봄날 오후 하얀 꽃이 눈꽃처럼 바람 흐드러지게 흩어지던 날 교정에서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지금도 떠오르네요 그 영상이 아마 오후 4시경이었을 거예요.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 모습, 넘 황홀했습니다. 빛처럼 마주치던 그 모습에 올 것이 왔구나 직감했지요. 그래도 나는 그저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듯이, 우연히 만난듯이 '잘 지내니?' 쑥스럽게 묻고는 황급히 뒤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에는 눈물을, 가슴에는 두근거림을 가득히 안고요. 그 날 밤부터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을 담은 첫 편지를 써 그녀의 학과 방에 올려 놓고 답장을 기다리던 며칠의 기다림이란 숨을 조이고, 애를 타우는 시간이었죠. 그 마음 전해질까요. "나도 오빠를 좋아했어." 그 한마디로 하늘을, 세상을 얻었습니다. 나는 그야 말로 사랑이었고, 생명이었지요. 잠을 자지 않아도, 밥을 먹지 않아도 늘 생기가 넘치는 하루 하루였습니다. 비실 비실 뭐가 좋은지 모르게 늘 웃으면서 다녔지요. 내가 좋아해온 사람도 나를 좋아했다. 어떻게 살아온 10년이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만나 함께 학교 다니고, 함께 수업 듣고, 함께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함께 새벽에 만나 기도하고 QT하고...... 그 황홀한 하루가 지나면 집에 가서 새벽까지 또 통화하고 편지를 써서 아침에 그 손에 전해 주고.... 어떻게 흘러버린 날인지 모르게 4학년 1학기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해 여름 방학에 터져버렸지요. 부모님이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 그녀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 아이가 날 따라 농활을 가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그 때만해도 세상이 바뀌기는 했어도 농활하면 운동권 의식화 기간 정도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지요. 집에서는 난리가 났구요. 그 해 여름 그녀는 집에 감금 당해서 교회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학기가 시작되자 그녀는 휴학을 했고, 그 해 겨울에 호주로 유학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더 가슴이 아픈 것도 그녀의 입에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 너무 힘드니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던 겁니다 ....... 이제 가끔씩 그렇게 가슴이 아프고, 가끔씩은 그 사람에게 아주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2) 사랑도 변하는 구나....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한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불같은 사랑에도 갈등과 마찰이 없을 수 없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이유없는 여자의 변심에 당황해 하는 남자의 말입니다. 사랑했는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부모님의 반대와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렇게 사랑도 변하게 되는가 말입니다. 애원하고 협박도 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비참하고 비굴하게 찾아가 어색한 냉대도 감수해 보았습니다. 부모가 반대하고, 세상이 갈라만 놓았다면 그렇게 억울하고 힘들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냐 말입니다. 어떻게...... 그러나 그렇게 10년을 기다려온 사랑, 함께 가슴에 고이 고이 간직했던 그런 사랑도 변했습니다. 그래 사랑도 변하는구나, 눈물이 흘러야할 그 순간에 눈물샘이 말라버렸는지 가슴만 퍽퍽하게 울렸습니다. 이제 내 스스로 상처에 대한 좋은 방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3) 친구 : 그래도 보고 싶다.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버림을 받고 친구를 불러내어 앉아 있습니다. 누구와라도 그 마음 알아주는 누구와라도 함께 있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면 그 여자가 기다릴 것 같아서..... 친구는 그럼 이렇게 하자고 합니다. 여자가 나이들어 쭈글쭈글해지고 할머니가 다 되었다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남자는 히~ 웃으며 그러니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보고싶다."고 합니다. 술을 마셔야 세상이 제대로 보였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가슴이 터져서, 미쳐 버릴 것 같아 살 수가 없었지요. 정말 꿈을 꾸는 듯한 그런 순간 순간 바싹 타들어가는 사막 한 가운데였습니다. 그래도 술을 마시면 마음이 진정되고 세상이 그나마 살만했지요.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러기를 반년... 몸이 견뎌나지를 않더군요. 장염으로 배가 뒤틀리고, 불면의 밤으로 온 몸과 마음이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몰골로 다음 해 신대원에 들어갔는데, 사람들 말이 20대 후반이 아니라, 40대 아저씨같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 때 사진수첩을 보면 참 끔찍하지요.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신학대학원 시험 보는날 밤새 잠을 자지 못하다 새벽녁에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시험시간이 다된 겁니다. 그냥 전철타고 택시타고 시험장엘 갔는데, 1교시가 10분 남았더군요. 그래도 합격했슴다... 내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던 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몰아가셨습니다. 이제 정말 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사는게 사랑인데 사랑이 없이 사니 죽음을 사는 것이라 스스로 결정했지요. 그 때부터 하늘 한번 꽃 한번 보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일부러 멀리하며 지냈습니다. 스스로에게 죽음의 형벌을 가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내 신대원 생활은 철저하게 물러섬과 돌아봄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외로웠고, 그 외로움이 점차 고독으로 나아갔음을 이제와 보게 됩니다. (4) 그 여자의 집 앞에서 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잊었는데 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 여자와 헤어지고 너무 여자가 보고 싶은 남자는 강릉에 사는 여자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갑니다. 그저 창 밑에서 그녀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집 창밑에서 밤을 새웁니다. 어느 밤은 그냥 그 여자의 집 앞에 갔습니다. 전철타고 버스타고 2시간이 되는 휴학한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가서 밤새 이슬 맞으며 그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면 그냥 학교로 갑니다. 그 때즈음 성수대교가 무너졌지요. 성수대교를 지나 학교로 올라왔는데, 다리가 끊어졌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저 다리 위에 있었어야 했는데...... 어느 날 용케 집에 부모님이 없이 그녀 홀로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러면 이제 문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냥 가라고 합니다. 전화도 도청되고 있습니다. 그저 그리움으로 어쩌지 못하는 내 열정에 겨워서......... (5) 여자에게 사랑은 부분이지만 남자에게 사랑은 전부이다.   "여자와 버스는 떠나면 붙잡지 않는 거란다." 영화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여자가 그리워 눈물 흘리는 손자에게 던져주는 이야기입니다. 여자에게 사랑은 부분이지만 남자에게는 사랑은 전부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사랑을 잃으면 다른 사랑으로 갈아끼우면 됩니다. 그러나, 남자는 사랑을 잃으면 삶 전부가 무너져 내립니다. 여자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사랑이 부분이기에 밥을 먹어야 살듯이 계속 그 사랑을 채워야 산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사랑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은 사랑으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이제 사랑없는 삶을 선택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남자에게 사랑은 전부이기에 도저히 스스로는 갈아낄 수가 없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강합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야비하고, 독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내 젊은 날의 모든 것을 가져 가셨습니다. 한번은 내 오른팔을 자르셨고, 또 한번은 내 왼팔을 자르셨습니다. 한번은 내 사회적 존재로 붙잡고 있던 운동의 깃발을 내리시더니, 또 한번은 실연을 경험케 하심으로 내 실존의 깃발을 내리셨습니다. (6) 어느날 문득 다시 찾아온 사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렇게 8년을 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철저하게 물러섬, 침묵의 시간으로 신학대학원을 찾았습니다. 돌고 돌아 제자리였습니다. 신학교에서 다시 찾은 것은 교리와 교회였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교만을 보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보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나를 제어하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셨으면 내가 어디까지 갔을까 생각하 며 감사하게 되었지요. 그동안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고 해놓고 사실 내 의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내 사랑이 하나님보다 내가 만든 나를 더 사랑한 사랑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녀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사랑해온 그녀를 더 사랑한 사랑이었음을 보았습니다. 내 욕심이었고, 내 애증이었지요. 그녀를 그녀로 사랑했던 '나'를 다시 만나고, 나에게 참 미안했고, 그녀에게 정말로 미안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다시 사랑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시간만...... 그러나 사실은 바뀌어지지 않지요. 그리고 이제 세상 모두를 사랑하기 전에는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던 그 말이 얼마나 큰 모순이며 교만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 세상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어느 순간 "이제 살고 싶습니다."  그런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신대원 2학년 여름이 다가오는 즈음이었지요. 그 때 내 앞에 나타난 그 사람이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 깊은물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을 가득 안고 살고 있는 사람, 생기와 생명,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면서 다르게 살 수 있는 그런 여자, 그녀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난 아내에게 '물'을 배우고, 전 아내에게 '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안해를 통해 난 세상을 다시 얻었고, 사랑을 다시 보았고, 내가 나임을, 내가 여자가 아니고 남자임을 만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나 지금 여기로 깨어나 이곳 나 되어감의 세상에서 나의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수련장으로 아내와 만나고 내 가정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그 사랑이 아픈 사랑일지라도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혼자의 가슴 속에만 묻어두어야 하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 비해서. 밝힐 수 없는 사랑,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사랑, 그러나 그 사람에겐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가슴이 잿더미가 되는 줄 모르고 그래도 슬프네요. 많이..... 이렇게 내 아내에게는 감히 할 수 없는 긴 이야기를 옮겨 보았습니다. 나만의 아티스트 데이트였고, 잃어버렸던 나를 되돌아보고, 다가가 사랑하고 안아준 시간이었습니다. 가을이 있고, 고독이 있음으로.... 봄날은 그렇게 갔네요. 그리고 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이렇게 다시 봄날이 오고 있습니다. 깨어서 잘보고 잘들으면.... 그 소리를 소리내어 함께 알립니다. 사랑에 지친 남자들이여. 연인 몰래, 아내 몰래 '봄날을 간다'를 보면서 내 속의 나와 다시 만나고, 충분히 그것을 경험하고 잘 살려 돌려 보내지요. 그리고 마음껏 울어도 주고, 슬퍼도 해보면서 가을을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아내는 집단상담 T-gruop 에 들어가서 또 다른 나와 만나고 있을 그 시간, 나는 나를 만나 위로해주면서 나와의 아티스트 데이트를 이렇게 했습니다. 아내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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