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0
◎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8/8/26(화)
◎ 조회: 889
마가복음(70) : 헌금, 헌신, 삶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막12:41~44)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보고 계셨습니다.
‘바라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무엇을 볼까요?
가만히 내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되어 봅니다.
예수님은 헌금을 누가 ‘얼마나’하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헌금을 누가 ‘어떻게’하느냐를 보고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자세와 사람의 중심을 보는 눈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도리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헌금,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그 무엇을 지켜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하늘이며 ‘나(Self)’라는 말씀입니다.
'내(Ego)‘가 아니지요.
그런데 누구에게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나만 잘 하면 됩니다.
내가 거짓이 없으면 됩니다.
이것은 ‘상대’가 아니고 ‘절대’입니다.
상대의 세계에는 ‘나쁜 일'이 있고 '좋은 일'이 있습니다.
‘선한 일’이 있고 ‘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의 세계에는 그런 가치, 생각이 이미 없습니다.
‘그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대로 구원을 받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대로 구원을 받습니다.
사실은 나쁘고 좋은 것도 상대하는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판단과 정죄는 윤리와 도덕과 법률이 하는 것이지 종교와 영성의 잣대가 아닙니다.
지켜보시는 하나님, 내가 나를 지켜보는 앞에서 살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고, 내가 하고, 지금 합니다.
몸은 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말 그런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내 앞에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깨어난 소리,, "이제 정말 사랑하고 싶다“입니다.

부자들이 헌금하는 마음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마음, 자세가 그렇습니다.
부자의 헌금은 상대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 생활비 전부를 넣은 그녀의 헌금은 ‘절대’였습니다.
가치를 둘 수 없는 ‘사랑’, ‘헌신’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내가 얼마나 착하고, 얼마나 능력이 있고, 얼마나 잘생겼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타나 있는 것이기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만들어가는 ‘나’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주님 앞에 서있는 내 모습, 진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짜'는 사랑받는 만큼 의연해질 줄 알고, 사랑받는 만큼 성숙할 줄 알며, 사랑받는 만큼 사랑할 줄 안다. '진짜'는 아파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으며, 살아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진짜로 사는 삶, 절대로 사는 삶입니다.
부자는 많이 넣었다지만 사실은 조금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수련회를 해보아도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 ‘얼’이 꽉찬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절어지고 변화되어집니다.
수련회 후 후원회 원서를 받아 보면 그렇습니다.
산파들을 가슴 설레이게 하고 뭉클하게 하는 가난한 과부들의 후원이 있습니다.
정말 가진 것이 없었을 때는 도리어 잘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내가 급한 것을 알기에 그런 마음이 되어 주는 거지요.
그러나 생활이 변화되고 많이 가지고 있을 때, 그렇지 못하게 됩니다.
더 만족하지 못하고 이전보다 더 감사하지 못한 생활, 스스로 파놓은 지옥의 함정에 갇혀 살게 됩니다.

가만히 말씀 앞에서 헌금함 앞에 있어도 보고, 헌금하는 사람이 되어도 봅니다.
헌금을 하는 것은 생의 태도이고, 생의 진수, Action, 삶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헌금이고, 그것이 예배입니다.
내가 가진 그것을 다 내어 놓을 때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가장 가난합니다.
나는 지금 가장 힘이 듭니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정말 그 때입니다.
가진 것이 많을 때, 할 수 없습니다.
계산하고 따지고 기대하고,,, 그렇게 해서 헌금을 할 수 없고, 그렇게 한 헌금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활비의 전부를....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더 쉽지 않을까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가난은 비움입니다.
내 것을 비울 때 채울 수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도 없습니다.
자,,,
지금 내 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비울 것인가? 입니다.
지금 나의 습관,
나의 태도,
나의 중독,
나의 게으름,
나의 우울,
.
.
.

자, 이제 그런 헌금, 헌신, 삶, Action으로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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