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4
◎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8/9/7(일)
◎ 조회: 1367
창세기(2) : 나는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제 1장 창조

1-1. 나는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살아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와 대화를 한다는 말입니다. 같은 성경 말씀이지만 읽는 때의 나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말씀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또 누구와 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에게 누군가와 성경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함께 읽는 이들의 삶, 그들의 물음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비밀을 펼쳐 보여주시니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는 하나님의 세계 창조의 이야기이면서, 오늘 나의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셔서 또 나를 통해 오늘 세계를 창조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주인공은 하나님도 아니고, 아담도 아니고, 다른 기라성과 같은 조상들이 아니라 오늘의 '나'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태초에 세상과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는 어떻습니까?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그대를 창조하셨다."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며, '왜 살지?'라고 묻는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하늘의 소리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있게 하셨고 그가 나의 후견인이라는 것이지요. 그저 우연히 의미 없이 목적이 없이 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게 하셔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캐나다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오늘을 삽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오늘 나의 삶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지혜는 ‘우연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영성의 원리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 뜻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재앙이나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것을 이길 힘을, 그런 어려움의 순간을 넘어설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믿음에 있을 때에 좋은 것 싫은 것,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않은 것,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만들고 있는 허상임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달지 않지만 그것이 필요한 것임을 깨달을 때, 내 입에 달지 않은 것도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좌절은 뛰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맑은 눈 뜨라고 있다.”(박노해)


그런 눈을 떠서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나의 스승이요, 내가 반드시 경험해야할 사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삶은 신비이고, 정말 행복하다는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신비는 신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러할 때에 어떤 어려움, 어떤 힘듦이 찾아온다하더라도 반갑게 맞아줄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에게 일어난 일, 내 앞에 있는 사람, 그 모두가 필연입니다. 하나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이 정확하게 필요해서 일어난 일이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랍사람들은 이것을 '인샬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 산다."는 것이 믿음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출애굽의 절박한 처지에서 가나안을 찾아 떠나던 그들에게 가장 큰 힘과 믿음은 이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나타난 것,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나타난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Doing)이 아니라, 있는 것(Being)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지나가지 않고 오고 가지 않는 것을 찾아 갈급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고백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을 닮은 나도 세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출애굽, 나를 만나는 오솔길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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