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1
◎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8/8/26(화)
◎ 조회: 867
마가복음(71) :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막13:1,2)


잘 듣고 합니다!
사람되는 걸음을 안내받을 때 첫 번째 수련 초점입니다.
잘 들으라고?
잘 듣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으라는 거지......
의아해하며 답답해하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얼마나 못듣고 있는지, 얼마나 안듣는지를 발견하면서 전율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설거지를 했으면서도 물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쾌하게 흐르는 수돗물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뽀득뽀득 닦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서, 다음 할 일을 더듬어 가느라 지금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귀로 살아가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겠습니까?

어느 하비람이 수련을 마치고 이제 정말 잘 듣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다음 월요일, 아내가 일찍 출근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달라고 갈아입을 새옷과 가방을 챙겨놓고 나갔습니다.
서둘러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씻겨서 옷을 입힙니다.
가지런히 개켜진 새옷을 건네주며 입으라고 하자, 아이는 토요일에 입었던 옷을 달랍니다.
토요일에 입었던 옷은 이미 세탁기 속에 있습니다.
이 람은 그래도 수련회를 했으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타이릅니다.
토요일에 입었던 옷은 더러워졌으니 새옷을 입고 가자고 말입니다.
거듭하는데 아이는 마냥 입었던 옷을 가지고 오랍니다.
드디어 화가 치밀어 올라 평소 같았으면 주먹이 올라가 한 대 쥐어 박았을텐데 그래도 수련회를 한터라 화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되새기면서 세탁기 안에 있던 옷을 다시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옷 주머니에서 장난감을 꺼내고는 새옷을 입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아이는 한번도 토요일에 입었던 옷을 입고 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주머니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옷을 다시 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잘 듣지 않는지,,,,

또, 잘 보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라는 말일까?
나는 잘 보고 있는데....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영성적인 단어를 꼽으라면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라고 아침햇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잘 보면 정말 그 안에 담긴 기적과 신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생각대로 이미 다 편집해서 보고 있습니다.
내 모습을,
내 아내를,
내 아이를,
내 일을....
처음 보듯이 두 번 다시 못볼 듯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나무를 소나무로 보는 한 소나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남편을 남편으로
아내를 아내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한 사람으로, 남자로...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자가 선생님께 하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이고 보물입니까?
과연 정말 그럴까요.
정말 거기에 있었던 것이 돌이었을까요? 건물이었을까요?
그것도 굉장한 돌과 건물이었을까요?
제자들이 보는 눈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건물을 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에 현혹되고 매달려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야겠습니까?
건물을 보는 한 거기에 있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건물이라고 이름하는 그것이 그렇게 있는지를요.
그것은 굉장한 것도, 위대한 것도, 경탄할 것도 아닙니다.
나타난 것을 보는 한, 그것을 실체라고 하는 한 우리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매여서 끌려다니며 살게 될 것입니다.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만나고 경험해야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있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존재가 흔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존재는 한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이 늘 함께 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지만, 세상은 그 말씀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떠나 삽니다.
그리고 나타난 것들이 있는 것인양, 그것이 전부인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들을 보지 말고, 참 성전을 보아야겠습니다.
내 생각대로, 판단대로, 감정대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다시 한번 돌아봅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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