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들여진 예수(2001년 6월)
윌터 윙크가 말했습니다. “만일 예수가 이 세상에 실제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를 고안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는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의 강팍함에 좌절했고,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모습에 자주 격분했고, 단순한 믿음에는 감동했습니다. 진정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고 인간미가 넘쳐 보입니다.
하여튼 예수는 연구하면 할수록 그에 대해 일관된 생각을 갖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로마의 압제에 대해 침묵하면서도 채찍을 들어 성전의 잡상인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에 복종하라고 촉구하며 자신은 정작 율법을 파기하는 자라는 평판을 듣고, 나그네 한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을 끓이던 그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혹독하게 몰아 부치지요. 자신은 늘 부자와 창녀들에게 엄격한 태도를 취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두 부류의 사람들은 늘 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날은 재림에 대해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듯 하다가도 이내 그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르고 자신조차 모른다고 말하곤 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체포를 피해 달아났다가도 그 다음 순간에는 모든 사람의 만류를 냉정히 뿌리치며 당당히 체포에 응합니다. 평화에 대해 장엄히 외치던 그가 제자들에게는 칼을 집어 들라고 외쳤습니다.
신학교 첫 학기를 마치며 나는 자퇴를 하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신학교를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오셨다면 과연 신학교에 계실까?”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학교에 의해 엄청난 배척 받고 있었겠지.” 아니, 신학교에 입학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도서관에 처박혀 몇 년을 입학고사를 위해 투자할 인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어찌 기적적으로 합격을 해도 술과 담배를 안 한다는 서약을 하실 리가 없으니 면접에서 탈락이다.” “세상에 그 많은 흥미를 뒤로하고 이 거룩을 방탄 조끼나 되듯이 둘러쓴 자들과 함께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찾는 예수는 신학교에서 만날 수가 없어.” 이런 낭패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여튼 성서에서 내가 만난 예수는 예측 가능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으며 흥미롭고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찌해서 이렇듯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물을 그토록 순화시켜왔을까? 우리가 늘 그림에서 보듯이 어린 양을 안고 깨끗한 피부에 인자한 미소를 지닌 상으로 말입니다. 어린아이를 안고 “부모 말씀을 잘 들으렴, 그러면 천국에 간단다.”고 말하는 모습으로 ‘도로시 세이어’는 교회가 예수를 교리에 맞게 지나치게 순화하는 것을 비꼬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토록 효율적으로 유다의 사자의 발톱을 자르고, 허약질의 목사들이나 나이 든 여자 교인들을 위한 가정용 애완동물로 인증해 버렸는가?” 유다의 사자라, 그렇습니다! 예수는 분명 유다의 사자와 같습니다. 때로 온순하며, 넉넉하고, 때로 포효하며. 당당하고, 때로 거칠고, 난폭한 유다의 사자, 그의 발톱을 자르다니.
요즘 심방을 하면서 신학교 시절처럼 다시 한번 좌절을 겪고 있지요. 너무나도 질기고 억센 율법의 줄로 동여매어진 성도들을 피부로 접하게 되면서 얼마나 많은 종교적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지. 아니, 이젠 당하다 못해 얼마나 요령 있게 그런류의 종교인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성도가 되었는지. 그들에게 전해지는 순화된 예수, 길들여진 예수, 또 그들이 화답하는 예수에 대해 들으며 가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한편, 자주 나는 심방 가운데 다양한 예수를 만납니다. 80세 노인으로 만나는 넉넉하고 지혜로운 예수, 29세 처녀로 만나는 뾰족하나 활기찬 예수, 40대 남자로 만나는 낙심한 예수, 오직 엄마의 품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연약한 예수, 평생을 또, 앞으로도 한동안 남을 속여 가며 살아가는 예수, 밥상을 뒤엎으며 돈을 들고 노름판으로 달려가는 예수, 서울역에 거주하며 300원을 받으러 베낭 메고 교회마다 순회하는 예수, 병상에 누워서 찾아가면 수줍어서 고개를 못 드는 곱게 늙은 예수, 그 각기 만나는 예수로 인해 나는 더욱 더 예수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예수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나는 그런 예수가 좋습니다. 언제까지나 말입니다. 길들여 지지 않은 예수가 좋은 물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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