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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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20/1/14(화)
20190605_101913.jpg (367KB, DN:19)
20190605(#남미 37일) 수크레 : 하얗고 달콤한 도시  


● 20190605(#남미 37일) 수크레(Sucre) : 설탕처럼 하얗고 달콤한 도시

밝았습니다. 수크레의 하늘도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맑음입니다. 다행히 고산지대에서 벗어나 숨이 잘 쉬어집니다. 숙소 마당에 차려진 조식을 행복하게 하고 먼저 버스 터미널로 가 라파스(La Paz)를 가는 교통편을 알아봅니다. 역시 라파스도 야간버스 밖에 없네요. 어제 혼이 나 내일 밤 8시 세미 까마로 100볼에 표를 샀습니다. 완전 침대처럼 눕는 자리도 있는데 180볼, 어쩔까 하다가 소심하게 100볼 세미 까마로 했습니다. 아침에 우유니 복장으로 나왔더니 버스 터미널까지 30분 걷는데 땀이 납니다.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가볍게 갈아입고 카메라 배낭도 지지 않고 훠이훠이 산책하듯 거리로 나왔습니다. 수크레 사람들의 인상이 참 좋습니다.

볼리비아의 수도 수크레, 설탕이라는 뜻이랍니다. 하얗고 달콤한 설탕 맛, 우유니 사막을 지나와서 더더욱 볼리비아에 이런 도시가 있다니 믿겨지지 않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도시 전체가 지정되어 있다고 하지요. 구시가지로 나왔는데 도시가 잘 정돈되어 있고 복잡하지도 않은데다 관광객도 많지 않고 한없이 여유롭고 편안해서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인포메이션 간판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수크레 안내를 받았습니다. 안내자의 말로 수크레는 박물관 도시랍니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볼만한 박물관이 10여 개나 된다구요. 서너 개 추천을 받아 나옵니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좋아도 배가 고파오고 화장실 생각이 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지요. 마침 재래시장을 지나게 되는데 또 딴 세상입니다. 환전도 정식 환전소에서는 미국달러 1불에 6.92볼로 해주는데 시장은 6.94네요. 물론 위조화폐 등 위험하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시장에서 환전을 해보았습니다. 미국 돈으로 200불을 주었더니 1388볼을 줍니다.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수크레에 유명한 볼리비아 음식 맛 집이 있습니다. 엘 파티오(El Patio)라고 거기서 꼭 살테냐를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찾아가 요기를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엠빠냐, 만두 같은 음식이지요. 고기 살테냐 1개를 시켰는데 8볼입니다. 입에 잘 맞습니다. 2개를 시킬껄 그랬어요. 콜라와 같이 13볼로 기운을 차립니다. 다시 시장을 지나다 양이 모잘랐는지 길거리 빵을 5볼 주고 사먹으며 걸어 점심으로 대신하지요.

수크레도 메인 광장인 ‘25 데 마요(25 de Mayo)’를 중심으로 볼거리들이 대부분 걸어 다닐 거리에 모여 있습니다. 일단 구글 평점이 가장 좋은 자유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여기도 스페인처럼 박물관이 12시면 문을 닫고 오후 2시30분에 다시 연 답니다. 11시 45분이라 물어보니 들어오라 하면서 12시20분까지 볼 수 있다구요. 대통령궁처럼 볼리비아 독립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작은 박물관이었습니다. 가이드 없이 돌아보니 10분이면 다 보네요. 하지만 박물관 건물 자체가 볼리비아의 작은 역사여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다릅니다.

자유 박물관을 보고 나오니 다른 박물관들이 문을 닫아 수크레를 전망할 수 있다는 레콜레타 언덕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게 수크레는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그대로 민낯을 보여주니 좋습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하교를 하고 시장을 가고 오고 직장을 가고 오는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 청소년들의 시크함이 있는 그대로 좋습니다. 레콜레타 언덕에 올라가니 또 다른 맛이 있네요. 레콜레타 근처에 여기 원주민들이 천을 짜는 양식을 재현하고 그 특징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추천받았는데 아쉽게도 중간에 쉬는 시간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보통은 숙소에서 한번 나오면 일정을 다 마치고 들어가는데 수크레는 안마당 같아 잠시 숙소로 들어가 쉬었다 박물관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나오기로 합니다. 커피도 마시고 충전도 하구요. 그리고 밤에는 다시 레콜레타 언덕에 올라가 야경도 보아야겠어요. 수크레는 볼리비아의 다른 곳과 다르게 치안이 좋다고 하니 밤에 혼자 다녀도 괜찮겠지요?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쉬고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 거리로 나갑니다. 먼저 수크레의 오벨리스크와 그 옆에 어린이 공룡 놀이터를 찾아보았습니다. 공룡 모양으로 놀이기구들이 되어 있다고 하지요. 재미있었습니다. 공룡 놀이터에 가니 나는 분명 수크레가 처음인데 언제 와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있죠? 데자뷰라고 하는데 이제 정신까지 몽롱해지는가 봅니다. 공원 앞에서 오렌지를 통째로 짜주는 음료수도 5볼 내고 사먹어 보고 수크레 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배가 고파 옵니다.

다시 수크레 재래시장으로 들어가 2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볼리비아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시장음식이니 외국 사람들이 올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다 사람들 먹는 음식인데요. 뭘 먹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친절한 아줌마가 음식 뚜껑을 열어 보여주면서 고르라고 하네요. 나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카르네를 달라고 하니 고기와 콩 볶음 비슷한 걸 보여줍니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좋다고 달라고 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접시에 쌀밥을 가득 담고 위에 '그것'을 부어가지고 오는데 먹음직하고 또 정말 입에 잘 맞습니다. 뭔들 안 맛있을까요? 기분이 업 되어 손짓 발짓을 하면서 음식 이름을 물으니 사이세(Saice)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냐니 손가락 10개를 펴서 보여주네요. 10볼이라니요! 2000원도 안되는 겁니다.

이렇게 점저를 잘 먹고 추천받은 역사 고고학 박물관으로 씩씩하게 찾아갔는데 입장료가 45볼이네요. 시장에서 밥값을 아낀 돈이 박물관 문화비로 지출됩니다. 그래도 들어가길 잘했습니다. 잘 마련해 놓은 그 큰 박물관에 나밖에 없습니다. 관광객도 많지 않고 현지인들은 더더욱 들어오기 어려운 처지지요. 역사 고고학 박물관에서 볼리비아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식민시대와 독립전쟁, 그리고 그 후로도 이어지는 자국민들끼리의 수탈과 저항의 혼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했는데 가슴이 아련해집니다. 사람들의 삶과 역사는 어디나 똑같습니다.

고고학 전시실에는 어디서도 흔히 벌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독 오늘은 흙으로 만들어진 그 잔과 그룻들을 쓰며 만족해했을 그네들의 마음이 접촉이 되어 찡했습니다. 해골로 남아 후손들에게 나타나 있는 그들의 남은 몸도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삶의 자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지요. 유럽의 여느 번잡한 박물관이 아니라 볼리비아의 중심 박물관에 나 홀로 서서 이런 경험을 하니 다 지금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네요.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다시 숙소로 들어오며 라면과 물을 샀습니다. 점저를 잘 먹어 밤에 뭘 안 먹어도 되겠지만 혹시 배가 고플까 싶어서요. 그리고 쉬면서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사진을 정리하고 일기를 씁니다. 너무 늦으면 안 되니 어둠이 내리자 수크레의 야경을 보러 레콜레타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숨이 차네요. 볼리비아에서는 저지대로 내려왔다지만 여전히 해발 2800미터입니다. 혹시나 밤에 혼자 다녀도 되는지 인포메이션에서 물으니 걱정 말라고 구시가지는 밤 12시까지도 안전하다고 웃습니다. 사실 볼리비아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문의일 수도 있는데 너그러이 이해해주어 고맙네요. 홀로 도시가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야경을 봅니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별은 보이지 않지만 시나브로 초승달이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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