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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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20/1/12(일)
20190604_091218.jpg (287KB, DN:12)
20190604(#남미 36일) 수크레 : 하룻강아지  


● 20190604(#남미 36일) 우유니(Uyuni) - 수크레(Sucre) : 하룻강아지 밤 무서운 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 먼저 수크레 가는 버스표를 사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어제 소금사막의 별을 보고 돌아온 그 아침이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매표소에 사람이 없네요. 헐, 우유니의 아침이 춥습니다. 어제 새벽 별빛 투어를 마치고 왔을 때는 우유니 마을이 그렇게 따뜻했는데요. 사람 마음이란 모를 일입니다. 매표소에 사람이 없는 덕분에 정든 우유니 마을을 만끽하며 돌아다닙니다. 헉헉 숨이 차네요. 고산증 약을 먹어야겠습니다.

삶이 그렇듯, 낯선 곳을 다니는 여행이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정류장에 다시 왔는데 버스가 없답니다. 분명히 이틀 전에 매일 11시30분에 버스가 출발하니 아침에 오라고 하구선요. 또 짐을 끌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알아보니 최선책이 오후 1시에 포토시라는 해발 4100미터에 있는 광산 마을로 가서 저녁 7시에 수크레 가는 버스를 타는 거네요. 말도 안통하면서 어떻게 됩니다.

덕분에 정류장 근처 식당을 찾아가 와이파이를 잡고 숙소에 늦는다 연락하고 볼리비아식 아침식사를 맛봅니다. 아, 맛있고 좋으네요. 선택을 잘했습니다. 가격도 20솔, 4000원입니다. 어제 선셋 투어를 마치고 밖에서 그릴에 고기를 구워 즉석에서 파는 볼리비아 식당에서 40솔에 저녁을 먹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었지요. 문제는 풀리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문제로 보는 한 문제 투성이지만 문제로 보는 눈이 바뀌면 문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합니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로 가니 프랑스 커플과 영국 노부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크레 가는 일행이 되었네요. 영국 노부부는 2년 전에 한국에서 2달 여행했다고 반가워합니다. 이렇게 1년에 2달은 여행을 다니는 노년, 참 좋습니다. 프랑스 젊은 커플은 1년 예정으로 여행 나왔다네요. 포토시 가는 버스는 완전 완행입니다. 5명의 우리 외국인 외에는 다 현지인들이 내리고 타고 그렇게 하염없이 갑니다. 6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는데 화장실도 없습니다. 밤 10시에 수크레 가는 버스는 직행이고 침대버스인데요.

그래도 우유니에서 밤 10시까지 짐까지 끌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낮에 이동하며 볼리비아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을 못했지만요. 해발 4200미터 고지를 넘어 굽이굽이 건조한 사막 산길에 버려진 마을을 라마들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조금 푸르른 곳에는 마을들이 있어 버스에 승객들이 오르내립니다. 어느 정류장에서는 음식을 들고 타서 손님들에게 팔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 시골 할머니도 있구요. 졸다가 깨다가 보니 해가 산 위에서 지고 있습니다.

포토시에서 수크레 가는 마지막 버스가 7시라고 했는데 이 완행버스는 7시 반이 되어야 포토시에 도착했습니다. 깜깜한 밤이지요. 함께 온 프랑스인 커플과 영국인 노부부는 안전한 여행을 하라면서 자기들은 포토시에서 자고 가겠다고 가버립니다. 혼자 덩그러니 포토시 버스 터미널에 남겨졌는데 옆에 인상 좋은 여자 분이 짐을 잔뜩 놓고 수크레를 간다고 합니다. 택시 같은 라이드 서비스를 쉐어하자고 하지요. 둘 중 하나입니다. 천사든 악마든... 그래도 상황이 악마는 아닌 듯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경험했으면서도 덜컥 믿어 버렸네요. 60볼로 오늘밤에 수크레를 가느냐, 30볼로 내일 아침에 수크레로 가느냐지요. 물론 포토시에서 자면 숙박비가 들고 예약한 수크레 숙박비는 환불이 안되구요.

잠시 기다리니 승용차 한대가 오고 짐을 트렁크와 좌석에 바리바리 싣고 출발합니다. 함께 라이드 쉐어하자고 제안한 여자분은 친절하게 구굴 번역기를 돌려가며 도와주려고 애를 써서 난 매번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만 되뇌었다지요. 그렇게 해발 4000미터를 넘어 2시간 가까이 달려 해발 2700미터의 수크레까지 왔습니다. 도시에 가까이 오니 그 많던 별들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네요. 사람의 빛이 하늘의 빛을 가립니다. 친절한 여자 분이 기사에게 숙소 주소를 입력시켜주어 숙소 앞에 잘 내렸습니다. 천사를 만났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오려면 1시간을 걷든 택시를 타든 했어야 했을텐데 잘 되었습니다. 고마울 뿐이지요. 결과는 잘 되었지만 오늘 우유니에서 밤 10시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 옳았고 안전했습니다. 겁이 없었던 거지요. 여행 베테랑인 영국 노부부도 해가 지자 포토시에서 머물렀는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볼리비아 수도 수크레,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도시라고 하고 여행하기보다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가야겠습니다. 우유니에서 며칠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경험을 했으니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야지요.

그 사이 자정이 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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