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12/3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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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8(#남미 29일) 발파라이소 : 네루다를 만나다  


● 20190528(#남미 29일) 산티아고(Santiago) - 발파라이소(Valparaiso) - 공항 노숙 : 파울로 네루다를 만나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 하루를 감사하며 시작합니다. 어두워지면서 불안했던 산티아고의 센트로가 밝아오면서 다시 활기차지네요. 이곳도 어두워지면 가게가 다 철문을 닫습니다. 아직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숙소에서 간단한 조식을 하고 짐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밤에 숙소에 돌아와 버스 터미널까지 1시간씩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짐을 터미널에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찾아와 터미널 보관소를 찾아보니 있습니다. 또 아침에 터미널까지 걸어갈까 궁리하다 우버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1200페소에 짐까지 아메다(Alameda) 터미널로 잘 왔습니다.

짐을 하루 맡기는데 5000페소, 칠레에서는 큰돈이지만 시간과 비용을 계산한 가성비는 나쁘지 않을 성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투르(Tur) 버스 매표소에서 비나 델 마르로 9시에 가는 버스표를 구하니 일정이 척척 기특하네요.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알려준 게이트에서 기다리는데 버스가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겁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맞다고 하고, 물론 말은 안 통하지만요.

결국 30분이 지나도 멍하니 기다리니 누가 와서 표를 보고는 여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헐... 투르 버스는 메이저 버스라 터미널이 다른 겁니다. 남미 버스 시간이 제멋대로라 그런가 보다한 내 잘못이죠. 버스 터미널이 다른 것도 몰랐구요. 다시 매표소로 가니 딱잘라 환불이 안되고 다음 버스표를 줍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면서요. 3000페소를 날리고 이렇게 경험을 합니다. 30000페소가 아닌 게 다행이죠. 또 덕분에 2층 맨 앞자리를 얻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밤에 공항에는 제대로 가 있을지 무지 궁금합니다.

산티아고를 벗어나니 다시 척박한 칠레입니다. 사막처럼 산에는 나무가 없고 선인장과 듬성듬성 관목들만 보이네요. 건조해서 그런지 북미의 해양성 기후의 분위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도 많이 누추합니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1시간 반쯤 달려 도착한 비냐 델 마르, 이곳은 발파라이소를 가기 위해 거치는 곳이지만 참 아름다운 해안가 도시, 뜻밖의 횡재를 합니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수크레 광장을 방문하고 근처 역사 고고학 박물관을 검색해 모아이 석상을 보았습니다. 칠레에 와서 세계 몇대 불가사이라고 하는 모아이 석상이 있는 이스터 섬을 가지 못해 대신 옮겨다 놓은 석상이라도 보고 가자 싶었지요.

그리고 아름답고 깨끗한 해안가로 나가 비냐 델 마르의 꽃시계도 보고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하염없이 걷는데도 날씨가 좋고 기운이 쾌청해 지치는 줄 몰랐네요. 이제 발파라이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배가 고파오고 화장실도 생각이 나 바닷가에서 무작정 들어간 마을에 스시집이 있습니다. 물론 칠레 사람들이 하는 스시집인데 맛과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이제 곧 사막으로 갈 처지, 어제는 한국음식, 오늘은 일본음식으로 도시를 만끽합니다. 갑자기 잘 먹고 잘 자는 여행 분위기로 바뀌어 버렸네요. 이제 발파라이소로 갑니다.

다시 해안가로 나가 발파라이소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무슨 버스를 타야하는지 모르겠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손님을 내리는 버스에 올라타 기사에게 "?아 발파라이소?"하고 물어보니 끄떡입니다. 알고 보니 해안가 버스는 다 발파라이소를 가네요. 5분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대충 구글로 검색해 중심부 근처에 내리니 공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이제부터 막막해지네요. 일단 바닷가 언덕의 집들이 다 관광지입니다. 이곳은 한국 통영의 벽화 마을처럼 도시 자체가 낙서, 아니 예술품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물론 화려하기 그지없는 브라질 리오의 셀라론 계단을 보고 와서 감흥은 덜하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도시 차체가 예술품이네요. 가이드 투어를 하면 더 자세한 안내를 받겠지만 혼자가 편해서 워킹 투어를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또 발파라이소를 다 헤매고 다녔다지요.

사진을 찍어가며 발길이 닿는 대로 다니는데 어느 으슥한 골목에서는 대낮부터 술에 취한 사람들이 술주정을 하고 있기도 하고 길이 막혀 있기도 하고 한국의 80년대 달동네 판자촌 분위기죠. 거기에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열린 하늘 박물관"이라는 표지가 보입니다. 잘 찾아왔구나 안심하는데 유독 범상치 않은 건물이 보입니다. 구글 평점도 만점에 가깝네요. 그래서 들어가 보니 운이 좋았습니다.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 생가였습니다. 칠레에 세 곳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라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 그의 생각을 찾았습니다. 칠레에서는 비싼 입장료 7000페소를 달라지만 흔쾌히 투척합니다. 잠시 지나가다 우연히 머물렀지만 그의 숨결과 삶이 뭉클하게 다가왔고 영혼의 샤워를 한듯합니다.

네루다는 평생 남미 민초들의 삶과 영혼을 그리다가 남미 최초의 민중 혁명 정부인 칠레의 아옌다 정권이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 쿠테타로 무너지자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병상에서 운명을 달리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남미의 역사 또한 고난의 역사입니다.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와 수탈에 신음하다 민중의 봉기로 피흘린 독립을 이루지만 여전히 외세와 결탁한 백인 지배층에 민초들은 수탈을 당합니다. 네루다는 그 남미의 역사를 꿰뚫으며 그의 대서사시를 이루고 또 사회주의 정치인으로 자신의 길을 갑니다.

네루다의 집에 한참을 머물며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습니다. 깨끗이 나와 버스 터미널에 걸어 도착하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아쉬워 1시간 여유를 두고 산티아고 행 버스를 예매하고 근처를 둘러봅니다. 그 때 딱 중국 레스토랑이 눈에 보이네요. 메뉴도 알 만하구요. 가격도 착하고 일단 점을 찍고 더 둘러보려다 1시간이면 밥 먹기 부족하겠다 싶어 들어가 주문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와이파이도 얻어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김치찌개에 스시에, 중국 음식까지 어제 오늘 화려한 식단이네요. 그리고 나니 버스 시간, 산티아고까지 편하게 와서 바로 짐을 찾아 오늘 노숙할 공항에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꽉 채운 하루 아슬아슬 고군분투, 은혜 안에 삽니다. 내가 하지 않습니다. 삶은 고마울 뿐입니다. 선물입니다.

<<파울로 네루다>>

그 역사를 말하려고 나 여기 있다.
버펄로의 평화부터
지구 끝, 영겁의 남극 빛 거품 속에서
온갖 풍상을 겪어낸 모래까지,
그리고 그늘진 평화가 깃든 베네수엘라의
깎아지른 곳에 난 굴에서까지
그대를 찾았다. 조상이시여,
검은 구릿빛의 젊은 무사여,
.
.
.
(지상의 등불)

투쟁하며 죽었던 이들을 당신들에게 인도하는 날,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삭은 땅에 주어진 하나의 밀알에서 태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은 밀처럼 뿌리를 모으고,
이삭을 모아,
고통에서 해방되어
세상의 밝은 곳을 향해 올라갈 것입니다.
(해방자들)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마음에 칼을 매달고
영혼에 떨어지는 방울을 참고,
창문으로 새로운 너의 날이 내게 밀려올 때,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나를 만들어낸 빛 속에 있고
나를 규정하는 그림자 안에서 산다.
포도처럼 달콤하나 끔찍하고,
설탕을 만드나 체벌이 기다리는 너,
너와 같은 종류의 정액에 젖어,
네 유산의 피를 마시면서,
너의 본질적 여명 속에서 자고 깬다.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내 병든 심장은 여기 있네, 내 몸의
피멍을 보게나, 얼마나 살게 될지 나도 모르겠네.
그러나 그대에게 다른 건 요구하지 않겠네, 그저
그 못된 인간이 민중에게 하는 짓을 말하게.
우리처럼 고산지대로 끌려간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
그자는 하이에나처럼 웃고 있다네. 동지,
그대는 이걸 말하게, 말해야 하네. 투쟁이 길어지니,
내 죽음은, 우리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네.
그러나 이 고난은 알려져야 한다네.
동지, 이 고난은 알려져야 하고, 잊혀서도 안 되네.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자, 이제 나가서 대통령께 자유를 달라고 해라.
그 양반이 네게 이 선물을 보낸 거거든”이라고 하더군.
몽둥이찜질을 당했지. 이 갈비뼈 그때 부러진 거야.
그런데 내 속은 옛날 그대로야, 동지.
죽이지 않고는 부러뜨릴 수 없는 게 우리지.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나는 일개 시인이다. 나는 그대들 모두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세계로 떠돌아다닌다.
내 나라에서는 광부들을 가두고
군인들이 판사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작은 추운 나라의
뿌리까지도 사랑한다.
죽어야 한다면, 천 번이라도
고국에서 죽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천 번이라도
고국에서 태어나고 싶다.
.
.
.
광부, 어린 여자아이,
변호사, 어부,
인형 만드는 사람이 내게로 와서
함께 영화관에 들어가고
가장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러 가기를.
나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하러 오지 않았다.
네가 나와 함께 노래하도록
노래하러 왔다.
(나무꾼이 잠에서 깨기를)

나는 내 민중이 제공한 층계를 통해,
내 민중이 숨겨주는 동굴에서,
내 조국과 비둘기 날개 위에서
잠을 자고, 꿈을 꾸고, 네 국경을 쳐부순다.
(도망자)

지상의 어둠에서
밤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민초, 셀 수도 없는 민초이다.
내 노래는 침묵을 통과할
순수한 힘을 가졌고
어둠 속에서도 배태된다.
(도망자)

나는 다른 책들이 나를 가두도록 글을 쓰지 않고,
백합을 열심히 배우는 이들을 위해 글을 쓰지도 않는다.
대신 물과 달, 바꿀 수 없는 질서의 요소들,
학교, 빵과 포도주, 기타와 연장이 필요한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
민중을 위해 글을 쓴다. 비록 그들이
투박한 눈으로 내 시를 읽지 못한다 해도.
단 한 줄이, 내 인생을 뒤흔든 대기가
그들의 귀에 닿을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농부는 눈을 들 것이고
광부는 돌을 부수면서 미소 지을 것이고,
공장 직공은 이마를 훔칠 것이고,
어부는 파닥대면서 그의 손을 태울
물고기의 반짝임을 더 잘 볼 것이고,
갓 씻어 깨끗해진 정비공은 비누 향기 풍기면서
나의 시를 볼 것이고.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는 동지였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왕관이다.
(나는 위대한 기쁨)

“나는 인간이 사랑과 투쟁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 역사를 말하려고 나 여기 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하러 오지 않았다. 네가 나와 함께 노래하도록 노래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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