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12/23(월) 20190523_075754.jpg (224KB, DN:29)

20190523(#남미 24일) 화산에서 마그마, 빙하와 춤을   ● 20190523(#남미 24일) 푸콘(pucon), 비야리카 화산 트레킹 : 마그마, 빙하와 춤을~ 알람을 5시55분에 맞추어 놓고 잤습니다. 6시에 화산 트레킹 픽업이 오기로 해서 넉넉하게 일어나 아침도 먹고 점심 도시락도 싸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알람이 울리고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뭔가 쌔한 느낌입니다. 알람을 4시55분에 맞추었어야 했네요. 이런! 정신없이 준비해서 나가면서 계속 뭔가 빠뜨린 것 같은 불안감이 오는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어제 런치로 사다 놓은 초코렛 바랑, 빵이랑, 음료수, 물병과 카메라를 챙기고 나갑니다. 짠! 투어 오피스에 와서 보니 썬크림을 안 챙겼습니다. 빙하와 눈이 덮인 화산에 올라가 보니 정말 썬그라스 없이는 앞을 볼 수 없고 썬크림 없이는 새까맣게 타겠더라구요. 지금 제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푸콘에 와서 제대로 여행을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과 회의는 여행이 20일이 넘어서면서 찾아오는 고비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뭐하나 싶은 거지요. 이 아름다운 푸콘까지 와서 이리저리 일정만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또 도시를 옮기고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지요. 내가 이럴려고 여행하나 싶은...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길 위에 서는 것이 여행이고 그렇게 길을 가며 일어나는 모든 것이 여행인데 어느 하나 뺄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지요. 작가가 작품을 할 때 도구를 들고 무슨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먹고 자고 생각하고 만나는 그 모든 것을 통해 작품이 나오듯이 말입니다. 여튼 1시간 늦게 일어나 우탕탕 길에 나서보니 무슨 불평을 할 정신이 없습니다. 일이 되게 해야 하니요. 다행이 픽업차가 오기 전에 문 앞에 나와 비야리카 화산으로 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푸콘에 들어서면서 멀리 타운의 배경처럼 우뚝 솟은 비야리카 화산이 그림만 같았습니다. 푸콘의 상징 같은 곳, 실제로 활화산이어서 몇 십년 전에 마그마가 분출해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산을 오르다보니 스키장 시설의 잔해들이 복구가 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데 화산폭발로 모든 게 쓸려갔다고 합니다. 그런 활화산을 오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상에 올라보니 방독면을 써야할 정도로 분출되는 가스가 정신을 아찔하게 합니다. 아직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공원 매표소를 통과해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오프 로드를 달려 스키 리프트가 있는 곳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이 웬만하면 리프트를 타라고 권하지요.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환전을 못해서 지갑에 있는 돈이 10000페소가 안되는 겁니다. 눈물을 머금고 1시간 반을 걸어 올라가지요. 그래도 다행히 맨 처음 도착해서 나중에 리프트 타고 올라오는 트레킹 멤버들과 엇비슷하게 트레킹을 할 수 있었네요. 물론 1시간 반을 헉헉 올라 이미 체력이 고갈 되었지만요. 속으로는 여기서 10000페소를 아꼈으니 80000페소에 트레킹을 한 걸로 하자 하고 있습니다. 푸콘의 화산 트레킹, 정말 잘 선택했습니다. 엄청난 고도에 5시간을 계속 올라가고 그것도 중반부터는 아이젠과 아이스픽으로 무장해 얼음 위를 걸어야 하지만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칠레의 손대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코스구요. 얼음 위를 아이젠을 신고 아이스픽으로 찍으면서 올라가는데 저절로 사뿐히 걷기가 됩니다.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고, 한발 한발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도가 놀라갈수록 찬란한 눈과 얼음조각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참 신기한 것은 올라가 보니 푸콘 일대와 비야리카 화산 근처만 맑고 다른 지역은 구름이 가득한 거 있지요? 높은 곳이어서 구름이 아래로 보일 수도 있지만 화산 지역의 어떤 특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이드 말로는 비야리카라는 이름 말고 원래 이름은 원주민 말로 '영혼의 집'이란 뜻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고향이지요.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흰 눈, 파란 얼음, 그리고 정상의 분화구에서 피어오르는 가스와 함께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붉은 마그마를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마그마와 빙하와 춤을 추었답니다. 고마울 뿐입니다. 여름 시즌에는 내려올 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겨울이라 얼음과 눈 상태가 위험해 기대하던 눈썰매는 타지 못했답니다. 일정이 늦어져 마을로 돌아오니 해가 지고 은행문은 닫혔고 또 처리해야할 일에 스트레스가 오지만 하나하나 알아차리며 잘 풀어갔습니다. 좀 손해 보고 사설 깜비오에서 환전하고 구글앱을 돌려가며 버스표를 사고 숙소로 돌아야 밥도 배부르게 해먹었습니다. 아쉬운 푸콘을 뒤로 하고 안데스를 넘어 아르헨티나 바릴로체를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다이렉트 노선으로 5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비수기라 산마르틴이란 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갈아타야 해 10시간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그것도 가 봐야지요. 아침 10시15분 버스입니다. 그리고 바릴로체에는 밤 8시30분에 나타나구요. 하루를 길 위에서 만끽하겠습니다. 바릴로체는 남미의 스위스라고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주방장 출신이 운영하는 가격도 착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이 유명하구요. 기대가 됩니다. 참, 비야리카 활화산에서 흘러나오는 온천 야행 코스도 푸콘에서 빼놓을 수 없는데 저는 놓쳤습니다. '테르마스 게오메트리카스(Termas Geometricas)'라고 하는 투어 코스입니다. 굉장히 아름답고 만족도가 높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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