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1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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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남미 16일) W트레킹 1일 : 꿈 길  


● 20190515(#남미 16일)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킹 1일, 라스 토레스(Las Torres) 캠핑장 – 룩아웃 베이스 토레스(Lookout Base Torres) - 라스 토레스(Las Torres) 캠핑장(20km) : 꿈 길

밤새 하늘에 별이 가득합니다. 상현달이 떠올라 캠핑장 앞 설산에 반사된 달빛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내어 주었습니다.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온 덕분에 그 장면을 부족하나마 담아낼 수 있어 행복한 밤이었네요. 7시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베이스 토레스 룩아웃으로 왕복 20km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밤새 추워서 침낭에서 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일치감치 일어나 숲에 가 볼 일을 보고 개울가에서 세수하고 오는데 가이드가 내가 없어졌다고 날 찾느라 소동이 났습니다. 밤에 퓨마가 나타났다네요. 7시에 모이라고 했는데 6시 30분도 안되어 다들 모여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앉았는데 알고 보니 여기 시간이 썸머 타임이 적용되지 않아 1시간이 빠른 겁니다. 내 스마트폰에는 6시 30분인데 여기 시간은 7시 30분이었던 것,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네요. 송구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푸레르토 나탈레스에서도 시간이 넉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일찍 간다고 갔는데 사실은 늦었습니다.

비 예보에 염려했는데 맑은 아침 하늘을 보며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내가 끼친 민폐로 출발이 1시간이 늦어졌어요.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1시간 늦게 올라 푸른 하늘 아래 삼봉을 보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올라가는 길에 푸르게 밝아오던 하늘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해 3시간여를 걸어서 Base Torres에 이르니 하늘이 회색빛입니다. 다행히 삼봉에 구름이 끼지는 않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비를 맞으며 돌아보니 삼봉에 이미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미안하고 다행이고... 올라가는 길 내내 꿈속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눈을 들어보는 파타고니아에서는 현실이 아닌 숲과 길의 아름다움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그 무엇이지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체력의 한계가 온 것인지 마음과 다르게 산에 오르는 몸은 너무 힘이 듭니다. 늘 마지막처럼 힘이 드는 것이겠지만 산에 오르면서 오늘처럼 한걸음 한걸음이 힘든 기억이 없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 번 걸었고 록키 산맥을 누비고 다녔다고 이제는 걷는 것은 더 이상 힘들지 않을줄 알았는데 쉬운 일이란 없습니다. 삼봉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1km를 한 시간에 걸쳐 올라가면서 어떻게 올라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오른게 아닙니다. 마지막 고비에 오르자 눈앞에 펼쳐지는 토레스 삼봉의 푸른빛과 그 아래 에머랄드 짙은 빙하 호수의 장관은 올라오며 흘린 모든 땀을 보상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지요. 우리 삶의 자리가 그러합니다. 그것을 피해서는 갈 곳이 없습니다.

삼봉 아래 베이스 토레스에서 여우와도 놀고 이름 모를 새들과 데이트도 즐기고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내려옵니다. 내려오는 길은 다행히 걸을 만 합니다. 주변이 눈에 다시 들어오지요. 그런데 아뿔싸 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네요. 비를 맞은 채로 캠핑장으로 돌아와 화장실은 어찌 가고 젖은 몸은 어찌할까 난감함이 찾아오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요. 버린 몸을 어찌하겠습니까. 비 소리 듣는 텐트 안에서 젖은 몸으로 하루를 돌아보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그래도 큰 비용을 지불하고 하는 가이드 트레킹이라 식사와 다른 모든 준비를 알아서 해주니 여유가 있는 여정입니다. 어여 저녁 식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비 소리 들으며 잘 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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