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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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12/5(목)
20190512_091120.jpg (241KB, DN:12)
20190512(#남미 13일) 푸에르토 나탈레스 : 참 예배  


● 20190512(#남미 13일) 엘 칼라파테(El Calafate) -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 : 진정한 예배

토론토를 떠난지 13일째, 아직 여명도 트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택시를 불러 칠레로 가는 버스 터미널로 향합니다. 엘 칼라파테에 도착한 날 미리 버스 일정을 알아보고 버스를 예약을 해 놓았지요. 온라인으로도 가능한데 직접 발품을 파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합니다. 유럽에서도 그렇고 남미에서도 국경을 넘는 것에 아무런 의미나 제약이 없습니다. 서로 하나이고 이미 다르지 않고 소통하며 관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남한과 북한의 휴전선, 아시아 나라들의 국경의 벽은 아직 두려움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엘 칼라파테에서 남쪽으로 향하며 마주하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습니다. 어제 그리 많은 비가 왔다는 것이 거짓말 같지요. 하지만 북쪽의 국립공원 쪽 하늘은 아직 구름이 가득합니다.

버스 안에서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찰라의 색들을 그대로 마주하니 시간이 멈춥니다. 그 빛과 색은 그 순간에만 마주할 수 있는 선물이지요. 하루 푹 쉬고 탄 아침 버스가 참 편안합니다. 드넓게 펼쳐지는 남미의 파타고니아 대평원을 홀로 달리는 버스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이네요. 그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루타 40” 도로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자부심이라고까지 하더군요. 정말 아름다운 길입니다. 체 게바라의 오토사이클 영화에서 보는 그 장관이지요. 여행, 일상에서 물러나 보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가는 길입니다. 알든 모르든 여행을 갈망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여행이든 심리적인 여행이든 그렇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요. 떠나보지 않으면 그 길을 잃어버립니다. 물러나 보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낯선 곳에 홀로 서 있으면 많은 상념이 오고 갑니다. 거기는 외로움도 있고 절망도 있고 누추함도 있고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물론 설렘과 환희와 감동도 있지요. 그 모든 감정들, 빛과 그림자를 오롯이 마주하는 것이 홀로의 여행입니다. 누구와 같이 하는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이런 압력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벌거벗고 마주하는 나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길에 서 있으면 자유를 느끼지요. 오동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도, 누구의 아버지, 목사, 기독교인이라는 틀도 털어집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있음으로 있는 그 나와 마주하는 순간은 찾아오는 사랑입니다. 문득 오늘이 주일이라는 것이 알아지지만 그것도 나에게는 무의미합니다. 이곳은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한국을 월요일이지요. 다 생각, 사람이 규정해 놓은 것이지 사실은 이런 나에게 모두가 주의 날입니다. 존재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평화와 기쁨이 진정한 예배가 아닐까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그 순간입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빛의 향연 속에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느끼며 예배에 들어섭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나를 사랑하는 그 일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지요. 나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루타 40을 달리던 버스가 칠레로 방향을 바꾸니 산악지대로 들어서고 하늘에 다시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고 비가 뿌리기 시작하네요. 길은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합니다. 오늘 야간 버스를 타지 않고 아침 버스를 타기를 참 잘했네요. 버스 여행의 또 다른 맛입니다. 드넓은 들판을 홀로 달리는 버스의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 안에 나도 오롯이 홀로이구요. 야간버스나 도심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여행과 다르고 하늘 위로 가성비 좋게 날아 가버리는 비행기 여행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남미의 파타고니아는 사시사철 푸르러지지 못하는 풀들로 늘 노란빛을 간직하고 나무 한그루 없는 대평원이 펼쳐집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여권에 스템프를 두 번 찍습니다. 한번은 아르헨티나 출국 도장이고 한번은 칠레 입국 도장입니다. 그걸로 끝이네요. 참 농수산물 같은 물품들은 국경을 통과하지 못한답니다. 엘 칼라파테에서 가지고 온 삶은 계란 한 개도 검색대에 걸려 가방을 열어야 했답니다. 계란을 찾아내더니 이리저리 굴려보고 삶은 계란인 것을 확인하고는 돌려줍니다.

그렇게 들어온 칠레의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인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들어와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비바람이 나를 반깁니다. 오늘과 내일 여기 바닷가 마을에서 머물고 화요일부터 4박5일 겨울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킹을 하게 됩니다. 산 속에서 트레킹을 마친 토요일에 다시 이곳으로 와 하루를 쉬고 칠레 남극의 전초 기지인 푼타 아레나스로 가 이틀을 보낼 예정이지요.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는데 칠레 페소가 없습니다. 지도 한 장을 받아들고 크지 않은 마을을 비바람 속에 다 뒤져보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환전소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장을 보겠다고 다녀도 마땅히 열어놓은 마켓도 없구요. 1시 조금 넘어 버스에 내려 비바람 속을 걸어 다니다 보니 지치고 한 일이 없이 하루가 다 가 버린다 생각하니 어이없고 속상하고 내가 뭐하고 있나 싶습니다.

그러나 또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 나그네 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사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순례자지요. 불평 속에서 나와 얼른 쌀과 양파와 감자와 마늘을 사서 들어와 밥을 해 먹습니다. 배가 부르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래도 비바람은 멈추질 않습니다.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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