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8/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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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_2(#산티아고 37일_2) 나의 끝은  
● 20170607_2(#산티아고 37일_2) 산티아고 - 묵시아 - 피스테라 : 나의 끝은



스페인 땅끝을 다녀와 앓아 누우며 한결이가 하는 말이 '수고했어요'입니다.
무슨 수고? 했더니, 피스테라도 보여주고 묵시아도 보여주었다구요.
참 내, 할 말은 다합니다.
아픈 와중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 걷기를 다하고 아프니 다행이랍니다.
한결이가 앓으니 좋은 점은 한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열이 나는 얼굴과 몸을 만져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평소같으면 건들지도 못하지요.
코를 골면서 잠든 한결이 옆에서 나는 물수건을 갈아주며 대낮같은 산티아고의 밤을 밎이합니다.

땅끝이 어떠했냐고 물으니 한결이는 묵시아는 광활하면서 평화롭고 피스테라는 고요하고 조용하다네요.
지난 겨울 피스테라는 비바람이 몰아쳤지요.
묵시아의 거센 파도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앉아 바람 소리와 함께 명상에 들었더랬습니다.
그런 고요와 평화입니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이 몽환적인 날씨에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다녀왔습니다.
지난 겨울은 산티아고에서 지내던 3일 내내 비를 맞았고 피스테라와 묵시아도 그랬습니다.
밴쿠버같은 해양성 기후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은 비가 많고 여름은 쾌청하고요.

'피스테라'는 갈리시아 말이고 '피니스테레네'는 스페인 말이라고 합니다.
한결이는 불어같다고 하네요.
불어로 '피니'는 끝이라는 뜻이고 '테라'는 땅이라나요.^^
그래서 땅끝입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땅끝이 절벽으로 바다를 맞듯이 바다도 끝나면 절벽처럼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지요.
콜럼버슨 목숨을 걸고 신세계를 탐험하구요.
지난 겨울 피스테라까지 걸어갈 때, 어느 순간 길이 끝나고 절벽처럼 바다가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때의 나의 느낌은 '길의 끝은 바다, 나의 끝은 감사와 찬미'였습니다.
나도 모를 환희를 길의 끝에서 맞이했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이 '먼 길'에서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고 노래한 것처럼 신을 맞이한 것이지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짜라고 했습니다.
진짜는 일상의 순례길입니다.
진짜 예배는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순례길에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순례길이 끝나고 변화가 없으면 도루묵입니다.
내가 하비람 영성수련 5박 6일을 하고도 깨달은 것이 없이 나온 것 같았는데 나는 한 달 두 달이 지나 일상에서 그것이 더 명료화 되고 구체화되었었습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내가 간절히 원하던 길을 만나갔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러하다고 한결이에게 말해주니 한결이도 고개를 끄떡입니다.
진짜 까미노는 이제부터지요.
일상의 까미노입니다.

땅의 끝은 바다이고 나의 끝은 감사와 찬미입니다.
감사와 찬미로 내가 걸어갈 길을 걸어가야지요.
40일 가까이 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력이었습니다.
걸어본 적이 없는 한결이는 태초의 낯설음을 만나 깜짝 놀랐을 겁니다.
그렇게 창조가 시작됩니다.
우리 순례길을 이렇게 다하고 우리 안에 환희와 기쁨이 솟아 났듯이 이 땅의 모든 순례자들이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 그 끝에 감사와 찬미를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 권리를 뻬앗긴 노동자 농민들의 지난한 투쟁의 길이 그러하기를, 분단된 조국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통일과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그러하기를, 또한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억울함 속에 부모라 꺽이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 온 유가족들의 그 힘겨운 순례길이 그러하길 두 손과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그런 나의 끝입니다.
야곱이 자기와 함께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마하나임을 외치고 천사와 씨름하던 어두운 밤을 지나 아침햇살과 함께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보듯이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출애굽입니다.

● 20170608(#산티아고 38일) 산티아고 :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 서비스 에필로그^^

산티아고에 오늘은 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어제의 산티아고는 신비스러운 날씨였지요.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한결이는 알베르게 침대에서 앓고 있고 나는 아프다는 표시도 못하고 가끔 한결이를 들여다보며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결이는 앓고 앓느라 산티아고 성당에도 들어가 보지를 못했네요.
홀로 낯선 땅, 불편한 침대 위에서 앓고 앓아 아름다워지길 그저 바라봅니다.
아프니까 알아지는 것들이 있지요.
착해지고요.
소중한 것들을 알아차립니다.
감사를 배우고 성장합니다.

오늘 그래도 일찍 일어나 순례자 사무실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며 순례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먼 길을 걸어 온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순례로 나름의 마지막 순례길에 서 있습니다.
기다리며 한결이와 나눈 이야기, 기다리는 것보다 걷는 게 쉽다는 거였습니다.ㅎ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파리 도착 첫 날 비행기가 연착되며 일정이 꼬이고 기차를 놓치며 만나던 불편함, 피레네를 당황스럽게 넘던 시간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 때는 그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지요.
두 개의 짐을 내가 대신 지고 산을 넘던 그 순간까지도요.
그 때 한결이는 산 위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나 때문에 아빠가 석양도 못찍는다고 미안해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미안해서 이렇게 걷는다구요.
그래서 깜깜한 10시가 다 되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던 첫날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이야기를 남기고 나는 새로운 길을 시작합니다.
함께 여행할 수 있어 고마웠고 그래서 나도 글을 쓰면서 더불어 많이 돌아보고 성장했습니다.
글을 쓰는 순례, 다 덕분입니다.
감사하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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