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8/2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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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산티아고 37일) 길의 끝은  
● 20170607(#산티아고 37일) 오 뻬드로우초 - 산티아고 : 길의 끝은



뻬드로우초에 도착하니 알베르게 뒷마당에 비릿한 밤꽃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ㅎ
지난번 순례길에 리오하에서는 수확하고 남은 포도를 따먹고 가리시아에서는 밤을 주워먹으며 걸었지요.
또 다른 경험입니다.
한동안 기침이 심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뻬드로우초에 이르니 그 기침도 신비하게 멈춥니다.
그런데 한결이에게 옮갈까 조심한다고 했지만 이제 한결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고 목이 아프다고 하니 속이 상합니다.ㅠ
정말 산너머 산이네요.
차라리 내가 아픈게 낫습니다.

그래도 아침 6시에 뻬드로우초를 떠나 어두운 숲길을 손전등에 의지해 걷기 시작해 20Km를 잘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다리가 뭉치고 기침을 시작해 힘들게 걷던 한결이도 성당이 보이기 시작하니 힘이 난다고 씩씩해집니다.
드디어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 잠시 도착한 감사와 기쁨을 나누고 순례자 사무실로 가서 순례증서를 받으려 했더니 줄이 너무 깁니다.
일정이 계획보다 늦어져 스페인 땅끝인 피스테라와 묵시아를 걸어갈 수 없어 버스를 타고라도 다녀오려 했는데 버스 시간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아 순례증서를 받는 것은 미루고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 버스 정류장 안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결이가 들어오는 길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보았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 순례자 안내소가 아니라 여행사였답니다.
잘 보고 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어서 그랬지요.
하지만 더 다행인 것은 그 여행사 상품 가운데 산티아고에서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5시간 코스로 도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비용도 1인당 35유로로 왕복 버스비와 비슷했지요.
한결이 컨디션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고 피스테라에서 등대까지 또 걸어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는데 한 번에 묵시아도 볼 수 있는 좋은 코스였습니다.
이왕에 일정 때문에 걸어가지 못할 바에 산티아고에 숙소를 잡고 여행사 상품으로 스페인 땅끝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묵시아와 피스테라 땅끝까지 다녀온 한결이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약은 먹었는데 열까지 많이 나 물수건을 해달라고 해서 밤새 한결이 물수건을 갈아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얼마든지 하지요.
한결이만 열이 내리고 아프지 않다면요.

한결이가 앓으며 잠든 옆애서 가만히 지난 한달여 걸어 온 길을 돌아보니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수 많은 일들을 도저히 감당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내 고백으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처럼 말입니다.
아니 내 힘이 아닌 '내' 힘으로 왔지요.
이미 되어 있는 길을 걸어왔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도와 동행하심을 나는 길이 이끌어 주었고 사랑이 함께해주었다고 감히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바람으로 비로 햇살로 진흙과 먼지로 함께하셨으니까요.
하나님, 진짜 '나'를 만나는 길입니다.
가짜는 길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이미 죽은 그것으로 살려하니 사망이지요.
생명은 살아 숨쉬는 그 바람으로 살아갑니다.
노예의식에서 주인의식으로 변하는 출애굽, 종이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함께하셨고 그 내가 걸어 온 길입니다.
이 먼길을 내가 걸어오다니요.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습니다.
그저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입니다.

길의 끝은 지금 여기입니다.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것이지요.
라바날 수도원의 신부님 말씀대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짜입니다.
진짜는 산티아고를 떠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라구요.
일상을 살아갈수록 산티아고 순례가 어떤 의미였는지 점점 더 명료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티아고로 이르는 길은 끝났지만 이제 진짜 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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