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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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7/8/10(목)
20170605_070412.jpg (86KB, DN:8)
20170605(#산티아고 35일) 오늘도 나는 하루를  
● 20170605(#산티아고 35일) 빨라스 데 레이 - 아르추아 : 오늘도 나는 하루를 걸었습니다.



한결이 말대로 나에게 갈리시아가 악하게 기억된 듯합니다.
한결이는 자기 표현으로 악하다고 한 것이고 정확하게는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의식되지 않았던 거지요.
아마도 산티아고를 100여Km 남겨둔 사리아 이후 갈리시아의 길은 더 이상 나에게 이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고 그보다 다 중요한 만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풍광도 나무도 산도 사람도 그 무엇도 아닌 내 안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었나 봅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다가 지나고 나서야 데자뷰를 보듯이 찾아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한결이와 걸으니 그 길이 하나 하나 매력적으로 다시 보입니다.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는 마을들이 많고 알베르게와 서비스 시설들이 잘되어 있습니다.
특히 큰 마을 멜리데에서 맛 본 문어 요리는 일품이었지요.
어제 쉬었던 빨라스 데 레이와 그저께 뽀르토마린, 오늘 쉬는 아르추아의 사설 알베르게들은 쾌적하기까지 합니다.
깔끔하고 까탈스런 한결이 덕에 이제 몇 유로 더 들어도 공립 알베르게가 아닌 사설 알베르게를 찾고 있답니다.ㅎ
내가 호강합니다.
오늘도 이번 순례길에서 해먹는 디너의 마지막이 될듯해 일치감치 장을 봐 냄비밥에, 라자냐에, 하몽 야채볶음에, 올리브와 샐러리 샐러드에, 치킨누들 스프까지 성대하게 차렸더니 한결이가 힐끗 처다 봅니다.
뭐 이리 많이 했냐는 거지요.
나 혼자면 절대 이리 해먹지 않는데 한결이가 있으니 이리도 제 버릇 남 못줍니다.ㅋ

얼마 전에는 박근혜 아줌마가 꿈에 나오더니 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꿈에 나와 나랑 같이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영웅적으로 구했습니다.
그러다 혹시 잠꼬대를 하지 않았나 걱정하며 눈을 떴지요.
어제 빨라스 데 레이의 알베르게는 정말 호텔이 부럽지 않게 굉장히 아름다운 알베르게였답니다.
그리운 분 노무현 대통령도 만나 뵙구요.ㅎ
그리고 시간을 아껴 아침을 먹지 않고 여명과 함께 길을 시작했는데 점점 안개 속으로 들어가 한동안 안개와 같이 걸었습니다.
안개 속에 동이 트는 장관도 보구요.
이어지는 숲길과 산길을 걸어 나오며 오늘도 하루를 걸었음을 절감합니다.
나는 그저 한걸음씩 걸을 뿐입니다.
내일 또 걸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길이지요.
그냥 지금 걸어갑니다.
김흥호 선생님은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닌 하루를 산다고 했습니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인 하루를 사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루살이입니다.

잠시 쉬는 틈에 한결이에게 창세기의 야곱을 떠올리면 뭐가 생각나느냐고 물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사고 형과 아버지를 속인 것과 열두명의 아들을 두고 요셉을 찾아 애굽에 내려간 것 등등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한결이에게 야곱이 베고 잔 돌베개와 찾아간 하란에서 만난 라헬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요.
이 이야기가 출애굽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야곱은 온갖 수를 다 써서 이삭의 축복을 받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도망자의 신분이었습니다.
마마보이였던 야곱이 홀로 사막을 걸어 낯선 땅 하란으로 가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을 터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 상상만 해도 처량하지요.
사막의 공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비참함에 의식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인생에 그런 광야 길이 있습니다.
에서는 광야를 지나지 않았고 야곱은 광야를 지납니다.
에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야곱은 광야를 걸어 본만큼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그래서 광야 길은 인생의 보물찾기입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면 하늘의 별을 봅니다.
집안의 편안한 침대에서 자면 보이는 것은 천정뿐이지요.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은 하늘로 이어지는 사닥다리를 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불안과 후회와 원망의 생각이 하늘로 이어져 용기와 평화와 사랑의 생각으로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고백은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는데 그것을 내가 몰랐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뵙지요.
혹독한 사막의 길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줄 알았는데 여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떠나보지 않은 에서는 그 축복을 절대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순례길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여행을 해 본 사람만이 보는 빛이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야곱은 하란 땅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하란이 어디이고 외삼촌 라반을 아느냐고 말입니다.
자기가 왜 길을 떠났는지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고 묻습니다.
물으니 하란 땅이 보이고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이 앞에 나타납니다.
라헬을 얼싸안고 목 놓아 울었던 야곱은 라헬과 사랑에 빠지고 라헬을 얻기 위해 칠년을 며칠처럼 기꺼이 일을 하며 사랑을 얻습니다.
그 길이 지루하고 힘들다면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지요.
야곱은 라헬을 만나기 위해 하란에 왔지만 또 지나가야할 길이 있기에 그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것이지요.

오늘 나의 순례길이 그렇습니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하루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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