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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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3(#산티아고 33일) 선택의 길  
● 20170603(#산티아고 33일) 사리아 - 뽀르토마린 : 선택의 길



오늘 사리아에서 뽀르토마린까지 오는 23Km의 길 내내 이슬비와 함께였습니다.
아마도 구름 속을 걷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해양성 기후인 갈리시아의 날씨가 여름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ㅎ
그런데 한결이는 이런 날씨가 좋다고 난리입니다.
주변에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뜨리아까스테라부터 이어지는 길이 너무 마음에 든다네요.ㅎ
마을 마을들이 이어지고 마을을 지나면 산길과 숲길이 아름드리 나무들과 함께인 것이 흡사 지리산 능선을 걷는 느낌입니다.
물론 우리 길이 산책길은 아니지만 길의 풍광 또한 순례길의 선물이기도 하지요.
한결이는 이런 날씨와 길만 이어지면 산티아고에서 다시 거꾸로도 걸을 수 있겠답니다.
이제 정말 걸을만한 모양입니다.
다행이지요.

요며칠 같이 걷고 있는 프랑스 노부부와 미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다 11일 전에 은퇴하고 순례길을 걷는 할머니에게 한결이가 이쁨을 받고 있습니다.
영어로 주절주절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다 프랑스어까지 한다고 덤벼드니 인기가 있습니다.
까미노의 경험은 길을 걷는 자기 이야기지요.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때 커지고 명료해집니다.
이야기 속에 자기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를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랍니다.
한결이의 까미노 경험, 이를 통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쉬운 일인지 알아가고 그래서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능이 있는 자, 노력하는 자를 당할 수 없고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는 거지요.
하늘의 명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걸은 성 야고보를 따라가는 순례길의 또 다른 의미는 자기를 찾아가고 자기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라 나는 여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니 말입니다.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은 이미 한번 걸었던 길인데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다가 지나고 나면 그랬었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해양성 기후인 갈리시아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서 그렇거나 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아지경에서 걸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지난 겨울 순례길에는 100Km 석주를 보지 못하고 50Km석주만 보았던 것 같은데 이번 길은 한결이와 같이 걸으며 100Km 석주를 기념하기도 했습니다.
이쯤이면 걸어온 길도 시간도 잊어지지만 한결이가 이번 순례길에 너무 고생을 해서 많이 축하해주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오다니요!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어 하는 그의 발이 살고 있는 그 분이 계신 까닭이지요.
주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진짜 당찬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흠모할 만큼 미모도 아름답기도 했구요.
손님을 대접할 만큼 친절하고 물동이를 이고 다닐 만큼 건강하고 자발성이 있고 낯선 길을 주저하지 않고 떠날 만큼 용감했습니다.
그런 그녀이기에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면서도 남편과 큰 아들 에서를 속여 가면서까지 야곱에게 축복이 전해지게 하지요.
장남도 아들인데 리브가가 왜 그랬을까 묻습니다.
단순히 편애일까요?
리브가 역시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기도해서 잉태를 합니다.
그런데 태속에서 쌍둥이가 나무나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 묻지요.
그 때 들은 응답이 둘째가 첫째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리브가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에서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 보이지만 리브가는 다른 것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리브가의 선택이 보여주는 출애굽의 또 다른 비밀입니다.
세상은 에서를 선택하지만 리브가는 야곱을 선택합니다.
생각은 에서가 옳지만 믿음은 야곱이 옳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돌아보십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구요.
선택, 어느 편에 서서 살겠습니까?
오늘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면 그가 태어날 곳은 어디일까요?
묻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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