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8/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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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산티아고 32일) 다시 안개 속으로  
● 20170602(#산티아고 32일) 비두에도 - 사리아 : 다시 안개 속으로



오늘 아침 정말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어제 산 아래 마을 '뜨리아까스테라'까지 가려다 산 위의 마을 '비두에도'에 멈추었었지요.
그리고 마을이 목축을 하는 곳이라 직접 기른 소를 요리한 스테이크로 순례자 메뉴를 대접받았는데 고기 맛이 환상이었답니다.
아침에 한결이를 재촉해 드디어 아직 어둑한 6시에 길에 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을 벗어나 길에 들어서는 순간 발 아래 운해가 펼쳐졌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산 아래 안개가 운무가 되어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던 거지요.
지난 겨울 순례길에서는 안개가 친근한 길벗이었는데 드디어 갈리시아에 도착하니 안개를 다시 만납니다.
난 지리산에서 발 아래 운해를 자주 봤는데 한결이는 처음인 모양입니다.
영화나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보다니 놀라워합니다.
아침이 주는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ㅎ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이미 피워 올라온 운무에 갇혔겠지요.

조금씩 아래로 갈수록 안개가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빨려들 듯이 안개 속, 아니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산 위에서 화사한 일출과 아침노을을 보았는데 산 아래는 깜깜한 어둠 속입니다.
그리고 아랫마을에 머물던 순례자들은 비옷을 차려 입고 걷기를 시작하고 있네요.
구름 아래서는 구름 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피어오르는 운무일 뿐인데 알 수가 없는 거지요.

오늘은 그렇게 우리가 산 위에서 보았던 그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때로 언덕을 오를 때는 안개가 짙어지고 언덕 아래는 안개가 옅어져 있구요.
오늘 걸은 길은 나도 지난 순례길에 지나지 않았던 길이었습니다.
산 아래 뜨리아까스테라에서 갈리시아의 관문인 사리아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번 내가 걸었던 사모스 베네딕트 수도원을 지나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5Km 정도 짧은 길로 산실을 지나는 길입니다.
지난 순례길은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어 사모스 수도원 길을 택했는데 오늘은 한결이의 선택대로 방향을 잡았지요.

오늘 길도 참 좋았습니다.
갈리시아는 날씨의 변화가 무쌍하고 마을을 지나면 까미노가 산속을 지나기에 걷기가 참 쾌적하지요.
오늘 산에서 내려오는 길,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샘물로 모아 먹을 수 있다는 표시가 있어 물을 받아 마셔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결이 표현으로는 완전히 약수였습니다.
온도가 낮아 시원한 것이 아니라 물맛이 갈증을 다 가시게 하는 바로 그 맛이었지요.
내가 언젠가 한여름 산행 길에 지리산 총각샘물 맛을 보고 깜짝 놀랐던 그 맛이었습니다.
만나는 바에서 쉴 때마다 콜라를 마시겠다던 한결이가 다음 바에서 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콜라를 시키지 않고 산에서 떠온 물을 마시겠답니다.
콜라를 밀려나게 하다니 기적을 일으킨 물맛이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런 약수 옆에서 살면 마실 것 걱정이 없겠다구요.ㅎ

드디어 산티아고를 100여Km 남겨놓은 사리아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00Km 이상을 걸으면 순례 증서를 주기에 스페인 사람들이나 시간이 없는 이들은 사리아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로 가기도 한답니다.
지난 겨울에도 사리아를 지나자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갑자기 늘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사리아는 알베르게도 많고 편의시설도 잘되어 있는 제법 큰 마을입니다.
덕분에 선택의 폭도 넓지요.
난 그냥 마을로 들어가 지나는 길에 알베르게를 선택하는데 한결이는 꼭 책을 보아야 하고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가 보면서 확인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발이 먼저 움직이는 나는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니 한결이가 시키는 대로 다해주지요.^^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사람이 땅에서 이루어 놓은 것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가지고 갈듯이 아끼고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다 지쳐 버리고 말지요.
가지려 하지 말고 누리는 것이 복입니다.
재미있게 잘 놀다 갑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등장하는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출애굽에 어떤 의미일까 한결이와 살펴봅니다.
그는 흉년 때문에 피해간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하나님이 백배의 축복을 해주고 싶어도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그럴 수 없는 것이지요.
산티아고는 거기 있어도 걷지 않으면 도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은 그런 이삭을 시기해 우물을 막아 버립니다.
사막에서 우물을 막아버린다는 것은 목숨 줄을 눌러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온유한 이삭은 아무 불평이나 시비 없이 자리를 옮겨 또 우물을 파고 또 다툼이 일자 이름을 '에섹'이라고 하고 자리를 옮깁니다.
자리를 옮겨서도 우물을 파지만 또 반대가 일자 이름을 '싯나'라고 짓고 자리를 옮겨 우물을 팠는데 이제 다툼이 없자 우물의 이름을 넓은 곳이라는 뜻의 '르호봇'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지경을 넓히고 이름을 지어가는 것이 이삭의 길이지요.
온유한 이삭이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온유하게 살아 누리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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