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8/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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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0(#산티아고 29일) 나의 모리아 산  
● 20170530(#산티아고 29일) 폰페라다 -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쪼 : 나의 모리아 산



오늘 도착한 빌라프랑카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적인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성당에 있는 '용서의 문'이 그렇습니다.
순례길을 시작했다가 질병 등의 이유로 산티아고까지 못가는 순례자가 이 문에 들어서면 산티아고 순례를 한 것과 같은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산티아고가 200Km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전히 지도와 안내서를 보며 어떻게든 8일까지 산티아고를 가고 싶어 일정을 계획하는 한결이에게 들은 정보지요.^^
이제 한주 남았네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 일은 난 모르지만 한걸음 한걸음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순례길에는 너무 걷고 싶어 이곳 빌라프랑카를 스쳐 지나가 결국 노숙을 하고 말았던 곳이기도 하지요.

어제 묵었던 폰페라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지키던 성전 기사단의 본부가 있던 곳이고 어제 넘었던 철십자가 산도 순례자들이 나를 내려놓는 곳이니 이제 정말 산티아고가 코 앞입니다.
내일은 코넬료의 순례자가 검을 찾고 돌아가는 '오 세브레이로'를 오르게 됩니다.
오늘도 한결이 일정에 따라 23Km 정도를 걸어 일찍 알베르게에서 쉬고 장을 보아 저녁을 해먹었습니다.
폰페라다와 빌리프랑카, 연속으로 공립 알베르게에서 밥을 해먹고 아침과 점심도 준비하니 분주하기는 하지만 뿌듯합니다.
오늘 주방은 후라이팬과 기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곳이라 어쩔까 하다가 쵸리또 도리탕을 해 보았습니다.
재료를 복지 못하고 원하는 재료가 없어 그렇지만 둘이서 닭도리탕을 그리워하며 맛있게 먹었네요.ㅎ
제가 또 한 닭도리탕을 하거든요.^^
스페인식 소시지인 쵸리또에 양념이 대부분 되어 있어 감자와 양파, 어제 남은 피망을 넣고 마늘은 깜빡 빼먹고 고추가루와 소금으로 간했는데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한결이와 마주 앉아 저녁 밥을 먹으며 아브라함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요 며칠 한결이도 아파서 신경이 날카롭고 나도 하루에 세 번 네 다섯 군데도 넘는 환부에 약을 바르고 바늘로 째고 거즈 갈아주고 하느라 진이 빠져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오늘은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답니다.ㅎ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단원, 그리고 창세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모리아산 사건이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산이 모리아산입니다.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니 한결이가 주섬주섬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달라고 하셔도 드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배웠고 다음에 다시 읽으니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게 믿음인 것 같았고 또 다시 읽으니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크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하는 일마다 다 형통했던 아브라함을 불러 시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장면 장면이 출애굽의 교과서로 사람이 믿음으로 서는 자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제 올라가 보았던 철십자가를 예를 들으면서 순례길에 나를 내려놓듯이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나를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니 한결이가 고개를 끄떡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의 생의 목표고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다시 달라고 하시다니요!
어느 순간 우리 인생에서 이삭이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재물이 축복인 것은 분명한데 어느 순간 재물이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명예와 권력이 그렇고 가족이 그렇고 학업과 직장이 그렇습니다.
그것까지 다시 내려놓을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죽인 것은 관계를 끊고 독립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살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삭도 죽고 아브라함도 죽습니다.
둘이 올라가 혼자 따로 따로 내려온 산이 모리아 산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 나는 이 순례길이 나의 모리아산이 되는 걸까?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지 가만히 묻습니다.
한결이의 독립, 그리고 나의 독립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줄 수 있고 주고 싶은 것을 다해서 주고 있나 봅니다.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칼과 불을 들고 모리아산을 오르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모리아산을 오르고 계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찢어지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내가 나의 모리아산을 홀로 오르고 있을 때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그 십자가를 지고 나의 골고다를 오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순례길, 한결이와 같이 걷지만 또 나에게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내 걸음이 그 기도와 잇닿아 있지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대한민국, 그리고 남북 통일과 평화입니다.
또 길에 앉아 숨과 함께 내 안에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지요.
이 순례길은 그런 나의 모리아산입니다.
나의 출애굽을 위한 정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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