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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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27(목)
20170525_065602.jpg (64KB, DN:12)
20170525(#산티아고 24일) 이삭도 보아야 하리라.  
● 20170525(#산티아고 24일) 레온 - 빌라당고스 델 파라모 : 이삭도 보아야 하리라.



레온에서 이틀 쉬고 오늘은 여명이 트기 전 새벽 6시에 길을 떠났습니다.
짐을 지고 지팡이를 내딛으며 한결이의 첫 말이 "내 발이 걷고 싶어 뛴다."고 합니다.ㅎ
걷다가 이틀 쉬니 걷고 싶을 수밖에요.
그렇게 힘차게 걸음을 시작해 레온을 벗어나기를 한참, 여명이 밝아오고 아침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내내 도로의 소음과 함께하는 길입니다.
잠시 도로를 벗어나도 그늘 하나 없는 뙤양볕이네요.
그래도 좋습니다.
12시가 조금 지나 20Km를 걷고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해 양파와 마늘과 고추 가루를 듬뚝 넣고 스페인 라면을 3개 끓이고 냄비밥을 해서 점심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시골 공립 알베르게가 시설은 열악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ㅎ
오늘 저녁도 밥을 해먹어야죠.
스페인은 보통 2시에서 5시는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낮잠 자는 시간이 의례화 되어 겨울도 그렇답니다.

오전에 짧은 길이지만 한참을 걷고 나서 한결이가 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올리브 나무가 좋으냐 분수가 좋으냐고 묻습니다.
뜬금 없이 물어 그냥 올리브 나무가 좋다고 하니 이상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아테네가 왜 아테네인지 아냐고 합니다.
아테네가 도시의 이름을 짓기 전에 신들이 주는 선물이 마음에 들면 그 신의 이름을 기리기로 했는데 아테네가 올리브 나무를 주고 포세이돈이 멋진 분수를 주었는데 사람들이 올리브 나무가 좋아 아테네의 이름을 선택했다나요.^^

나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조금 더 합니다.
아브라함이 길을 떠나 경험하는 이야기가 내 삶의 여정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한결이에게 직접 이야기하기는 처음입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내가 캐나다에 정착해서 살게 된 이야기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하기 어렵습니다.
한결이도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몰랐을 겁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계획으로 하갈을 통해 생각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기르는 동안 하나님은 그 13년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후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이스마엘의 재롱 속에 살고 있었겠지요.

난 7일짜리 비자를 받고 캐나다에 들어와 14년째 시민권까지 받아 살고 있습니다.
미국 학생비자가 학생운동으로 구속되었던 전력으로 막히면서 그 사이에 사연이 더 있지만 캐나다 학생비자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거절되었지요.
그래도 길을 떠나 7일짜리 방문비자로 토론토에 들어와 종교 비자를 받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공부도 일하기 위해 하는건데 일을 먼저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고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 하나 들려주면서 캐나다에서 교회를 열고 자리를 잡아가던 고마움과 기쁨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때 만났던 말씀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로 만족하며 13년을 살고 난 후에 받았던 말씀, "이삭도 낳아야 하리라,"입니다.

우여곡절을 넘어 캐나다에서 종교비자를 받고 안정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데 10여년 전 일반 하우스가 4~50만 불 하던 당시 100만 불이 넘는 하우스를 구입해 예가를 열게 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 토론토에 왔으니까요.
물론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필요해 친구들이 대출해 주고 주위 어른들이 빚으로 도와주어 시작했고 매달 빠듯하게 갚아가며 시작했던 일이었지요.
그런 위험 부담을 안으며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그냥 이제 주어진 안정적인 하루 하루에 만족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이삭도 낳아야 하리라는 말씀은 우리를 다른 길로 몰아갔고 또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신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 때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면 짧게 살다간 아내가 참 허망했을 것이고 지금 나 역시 후회 속에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만난 이야기는 막벨라굴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고 나자 대성통곡을 합니다.
돌아보니 길에서 고생만 시켰던 날들, 아내를 아내라 말 못하고 누이라 속였던 비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을 거구요.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는 아브라함의 비통함에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를 묻을 막벨라 굴을 헷 사람에게서 삽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으로 가나안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사라와 함께 하고자 했고 얻고자 했던 그 약속이 그렇게 실현이 되는 것이지요.
나로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많지만 양로원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남은 내가 아내와 함께 사는 일은 이곳에서 남은 그 일을 하는 것이라는 고백이었으니 말입니다.
막벨라 굴을 사는 아브라함을 보지 못했으면 내가 감히 시작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삭도 낳아야 하리라는 말씀과 막벨라 굴을 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함께 한결이에게 직접 내 이야기를 다하고 나니 난 어느 정도 빚을 탕감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간 한결이에게 내 이야기를 못하고 살았던 거지요.
그런데 다 듣고 난 한결이가 그럽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고 아버지가 양로원을 산다고 그것이 자기 땅이 되냐구요.
또 헛점을 찔렸습니다.ㅋ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한결이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던 토론토 생활에서 자기 집은 없었답니다.
대신 초등학교 내내 고등학교 내내 학교를 오고 가고 생활하던 노스욕의 Doris와 Kenieth 길이 한결이의 땅이었답니다.
거기만 서면 왕이 되고 주인인 느낌이었다구요.
하루에도 몇 번씩 10년이 넘게 지났던 곳이니 그렇지 않을 리가요.
가만히 들으면서 진짜 '나'로 소유가 아닌 존재로 사는 시작을 알아차리는 한결이를 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안내를 해줍니다.
록키 국립공원도 내가 나라에 관리를 맡기고 1년에 한번 100불을 수고비로 주고 가서 내가 사용하는 거라고 해주니 한결이도 시원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보면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선물을 누리면 되는 거지요.

길에서 발을 쉬어 주며 그늘에 앉아 있으면 짐을 배달 서비스로 다음 알베르게로 보내고 짐 없이 걷는 사람들을 봅니다.
나도 눈살이 찌프려 지지만 다들 자기 이유가 있겠지 하는데 한결이가 그럽니다.
짐을 보내고 걸으면 기분이 좋을까?
짐은 자기 자존심이랍니다.
짐 없이 걷는 것은 순례길이 아니라는 거지요.
자기 짐은 자기가 지는 것이고 또 그것이 자기 책임이니 말입니다.
물론 순례길이 아니라 걷기 길로 왔다면 그럴 수 있겠죠.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짐은 내려놓지 않으려는 한결이의 고집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 덧붙이는 한결이의 짐 철학이 있습니다.
자기가 지고 있는 짐만큼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답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짐을 내려놓고 짐 없이 걸을 거라구요.
다음에 누구와 같이 산티아고 길을 오게 되면 일단 짐을 꾸리게 하고 점검해 주면서 그 무게만큼 당신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말해주겠답니다.ㅎ
인생의 짐,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만큼 깨어 있는 것이겠지요.
짐을 나보다 더 사랑하니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순례길은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알아차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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