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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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산티아고 22일) 지혜에 이르는 길  
● 20170523(#산티아고 22일) 사하군 - 레온 : 지혜에 이르는 길



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별이 쏟아집니다.
낮에 길을 걷느라 밤에 별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쉬기로 하니 이런 맛도 있습니다.
아침에 그믐달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그래서 별이 밝았나 봅니다.
촛불을 끄면 별이 보입니다.
햇빛과 달빛으로 가려져 있지만 별은 빛나고 있는 거지요.

3일 걸어야할 길을 기차타고 30분 만에 레온에 도착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늘 하나 없는 대평원에 이어지는 산티아고로 가는 까미노가 보입니다.
그 길 위를 짐을 지고 말없이 걷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있습니다.
한결이도 그 길을 함께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발이 근질근질하지요.
지난 겨울 순례길에 발병으로 하루를 더 쉬었던 '엘 부르고 라레노' 마을에도 기차가 정차합니다.
사하군부터 레온까지는 기차 길과 까미노 길이 같이 이어지네요.
사하군부터 레온까지 10유로의 차비로 이동 가능합니다.

사하군에서도 몇명, 엘 부르고에서도 십여명의 순례자들이 같이 기차에 올랐습니다.
레온 기차역에 내리니 멀리 레온 대성당이 보입니다.
까미노 이정표가 필요 없네요.
레온 대성당을 바라보며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딛고 한 시간쯤 걸어오니 레온 대성당입니다.
한 4Km쯤 되는 것 같습니다.
길 위에서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부터 20여일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순례자들을 다시 만납니다.
우연히 묵었던 프랑스 바욘에서부터 같이 온 이탈리아 여자 순례자와도 마주쳐 눈인사를 합니다.

대성당의 위용 앞에 잠시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성당이 보이는 바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숨을 돌렸습니다.
알베르게들이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 주저하다가 호스텔을 검색해 더블룸을 찾았습니다.
병원대신 더블룸에서 쉬면서 한결이 상처를 치료하며 하루를 머물기로 합니다.
내일은 알베르게로 옮기기로 하구요.
다들 염려해주신 덕분에 한결이의 상태는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준비를 많이 해와 내 짐이 소독용품이랑 항생제로 무겁지만 덕분에 한결이를 잘 치료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내가 사는 모양이지요.ㅎ

점심을 어떻게 할까 의견을 나누다가 레온에 왔으니 스페인 음식 말고 다른 음식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한국식당은 없고 중국식당이랑 일본식당이 있네요.
한결이는 베트남 국수를 좋아하지만 베트남 식당은 레온에 없네요.
가까운 중국 식당이 1.2Km 정도 거리, 걸어서 15분 정도라고 되어 있는데 짐이 없이 걸으니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식사의 양도 가격도 맛도 딱 좋습니다.
점심을 이리 푸짐히 먹기는 처음입니다.ㅎ
4접시를 시켰는데 가격도 팁까지 푸짐히 주었는데 순례자 메뉴 2인 가격인 24유로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은 밥을 해먹기로 하고 장까지 보아 들어옵니다.
12시가 조금 넘었는데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 주변 온도계가 31도를 가리킵니다.
오후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래도 순례자니 길을 걷고 있겠지요.

점심을 배불리 먹고 들어오니 진짜 딩가딩가입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안자던 낮잠을 다 잤습니다.
한결이 핑계로 내가 호강하고 살이 오릅니다.
혼자였으면 절대로 식당을 찾아다니지 않았을 겁니다.ㅎ
해가 좀 누그러지면 시내 탐방을 다시 시작해야지요.
그리 더워도 그늘에 앉으면 서늘한 스페인 여름입니다.
낮잠을 자고 더 자겠다는 한결이를 두고 혼자 나와 한가한 도심 벤치에 앉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레온의 구시가지를 돌다가 만난 예쁜 성당 안에 들어가 한참을 기도하며 명상에 잠겨봅니다.
20여일을 걸어 이곳 레온까지 온 걸음을 돌아보지요.
24시간을 늘 붙여 있던 한결이와 떨어져 홀로 레온 거리를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내 걸음을 돌아보고 내 갈 길을 비추어 봅니다.
기도 안에 들어가 모두를 다시 만나고 이제 레온에서 다시 새로운 여정과 순례길이 되기를 마음을 모읍니다.
나에게도 한결이에게도 그러한 길을 만나는 새로운 충전의 기회이네요.
다시 정신을 차렷합니다.

돌아와 일어나 있는 한결이에게 밥을 먹겠냐고 물으니 먹겠다고 해 저녁준비를 합니다.
호스텔이 한가하고 주방 시설이 좋아 준비하기 딱 좋습니다.
냄비밥을 하고 소시지 초리또 야채볶음을 하니 낮에 먹던 중국 음식 부럽지 않습니다.ㅎ
밥을 먹고 한결이와 유대 신비주의 까발라 이야기를 합니다.
어제 아침에 말을 꺼내다 한결이가 말하지 말라고 해 깨갱했던 이야기지요.^^
낮잠까지 자고 났더니 먼 옛날만 같습니다.

유대 신비주의 까발라에서는 큰 지혜에 이르는 다섯가지 방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1. 침묵하기 - 일단정지, 가만히 있어봅니다.
2. 경청하기 - 잘 듣습니다. 생각빼고 통째로 듣습니다.
3. 기억하기 - 발견한 것을 잊지 않습니다.
4. 반복하기 - 여러번 반복해서 암기합니다.
5. 가르치기 - 남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빨리 배워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길이지요.
귀를 쫑긋하고 듣던 한결이가 자기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공부했답니다.
친구들과 시험공부 하면서도 서로 공부한 것을 가르쳐 주기로 하는데 서로 가르칠 수 있다면 시험공부가 다 된 거라구요.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하실 때 침묵하고 잘 듣고 기억하고 반복하고 스스로 친구들을 가르쳐보니 달라지더랍니다.
이미 그렇게 우리가 다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1%만을 인지하고 나머지 99%는 모르고 사는 현실을 알려주는 까발라의 지혜, 이렇게 길을 가면서도 하나 하나 알아갑니다.

이제 한결이 상처를 한 번 더 봐주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오전에 살펴보니 수포가 다시 조금 차 있어 치료했는데 지금은 어쩔지 모르겠네요.
잘 회복되어 곧 씩씩하게 다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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