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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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23(일)
20170521_105943.jpg (145KB, DN:10)
20170521(#산티아고 20일) 두 마리의 늑대  
● 20170521(#산티아고 20일)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 레디고스 : 두 마리의 늑대



늦게 도착한 탓에 까리온에서 어쩔 수 없이 또 호스텔 2인실에서 잘 쉬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방이 다락방이어 창문이 천장에 뚫렸는데 밤 10시가 되어도 하늘이 환합니다.
난 너무 편해서인지 잠을 설쳤는데 한결이도 침대가 너무 푹신해 허리가 아팠다구요.ㅎ
근데 한결이 발이 나아가니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드 버그는 아닌 것 같은데 벌레에 물린 듯 무릎과 종아리가 퉁퉁 붓고 화상을 입은 것 같은 물집까지 잡혔습니다.
참 고난의 연속입니다.ㅠ

그 다리로 가뜩이나 고난의 길인 오늘 17Km 대평원을 걸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그대로이고 마을 하나 만나지 못하는 들길입니다.
지난 겨울 이 길을 홀로 가다가 부지중에 나는 "아. 길이 좋다"를 만나고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이 나를 걷는 경험을 했더랬지요.
컨디션이 좋아도 즐기기 쉽지 않은 이 길을 한결이는 절뚝거리며 까치발로 짐을 지고 걸었으니 생각만 해도 속이 상합니다.
결국 마을을 몇Km 앞두고 신음을 소리내어 지르며 걸으니 주변의 순례자들이 다 놀랍니다.
왜 내가 이러고 있는지 속으로 수도 없이 물었을 겁니다.
정말 고난의 순례길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나는 그런 한결이에게 하루 종일 말도 못 붙이고 가까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편한지 나에게는 더 쉽게 화를 내는 아들을 보며 그래도 화낼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 여기지요.ㅠ
신경 쓰인다고 먼저 가라고 하니 난 저만치 가서 한결이가 오도록 기다리며 드넓은 들판에 앉아 숨을 고르며 명상에 잠깁니다.
나는 길이 천국인데 한결이는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닌지 내내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루를 마치고 나니 두 어깨가 빠지는 듯이 아프네요.
내가 몸살이 날 지경입니다.
한결이는 몸이 지옥이고 나는 마음이 지옥입니다.
여기서 일단 정지, 우연은 없으니 그 아유를 몯고 생각 바꾸기로 들어갑니다.

이 대평원에 순례자로 가득합니다.
어느 때는 길이 꽉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니 최성수기인 여름에는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저 사람들이 다 알베르게 경쟁자로 보이니 안타까운 현실이지요.ㅠ
여름 순례길의 환상이 무너집니다.
홀로 마음껏 걷고 서고 하던 겨울 순례길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마을에 도착했는데 한결이는 7Km를 더 걸어 다음 마을까지 가겠답니다.
지난 겨울 40Km를 넘게 걷고 묵었던 레디고스의 'La Marena' 알베르게 시설이 너무 좋다고 했던 것을 한결이가 기억하고 기어이 거기로 가겠다구요.

그 컨디션으로 다시 길을 나섰으니 쉬울 리가 없습니다.
결국 한결이가 너무 못걸어 한결이 여권과 크레덴시알(순례자 증명서)을 내가 챙겨 먼저 알베르게로 가서 체크인을 했습니다.
다행히 이층 침대에 자리가 있었네요.
침대를 배정받고 다시 한결이를 데리러 한참을 되돌아 걸어갔는데 한결이는 왜 왔느냐는 눈빛입니다.
짐이라도 대신 져주려 했더니 여기까지 자기 힘으로 왔으니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 똥고집은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시원한 음료수를 사놓고 기다리랍니다.ㅎ
그래서 다시 알베르게로 가서 음료수를 대령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한결이의 상태가 마음에 걸려 하루를 쉬어야하지 않겠나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를 치료도 해야 하는데 2층 침대에 누여 놓는 게 마음에 걸리구요.
다행히 2인실이 남아 있는 것이 있어 침실을 옮겼습니다.
한결이는 잠시 쉬고 다시 생생해져 침대에 누워 딩가딩가입니다.
내일 하루를 더 쉬든지 15Km를 걸어 큰 마을인 사하군까지 가서 약국에라도 보여야할 것 같습니다.

이곳 알베르게의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침실과 샤워시설, 세탁시설도 편리하구요.
햇살 좋은 오후에 잘 쉬고 둘이라 사흘에 한번씩 하는 빨래도 깔끔하게 잘해 개운합니다.
한결이 분위기를 봐서 오늘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인 두 마리 늑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사는데 하나는 착하고 사랑스럽고 정의로운 늑대이고 다른 하나는 난폭하고 악한 늑대라구요.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너는 어떤 늑대가 싸워 이길 것 같으냐?"고 물어줍니다.
궁금해 하며 바라보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라고 일러주지요.
그렇습니다.
내 안에 두 가지 힘이 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입니다.
선과 악이구요.
사랑과 미움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어둠과 싸우지 말고 빛을 따르라고 하지요.
오늘 너는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었는지 물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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