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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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산티아고 19일) 함께 이르는 '먼 길'  
● 20170520(#산티아고 19일) 보아딜라 델 까미노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 함께 걷고 걸어 이르는 그 '먼 길'



부르고스 지나니 펼쳐지는 메세타, 대평원이 찬란합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배신감과 불안감에 몸서리칠 그 때입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가기 쉬운 때이지요.
그 때 하나님은 너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리고 걸어보라고 하셨지요.
지금 내 현 위치를 파악하고 어떤 눈을 뜨고 바라볼지 선택하고 또 바라본 만큼 걸어가야지요.
석가모니의 마지막 유언도 발을 내 놓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한결이에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길을 가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걸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길이지요.
우리가 순례의 여정으로 그 길을 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인생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을 찬탄하며 걷다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마을, 쉼터가 반갑습니다.
내 인생의 쉼터, 친구들과 이웃이 그렇습니다.
나도 그런 쉼터가 되어야지요.
오늘도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8시간을 30Km 가까이 걸었습니다.
나는 6시부터 준비하고 나와 있는데 한결이는 7시가 다 되어 나옵니다.
그 시간 동안 손이 다 곱는 아침 추위를 견디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 혼자 걸었으면 이미 저만치 갔겠지만 또 함께이니 감당할 몫이 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그 때 어떤 눈을 들어 볼지를 내가 선택하는 거지요.
그렇게 조금 늦게 출발한 덕에 프로미스타로 이어지는 까스띠야 대운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속의 일출을 맞이합니다.
여명에 걸었으면 또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조금 늦게 걸은 덕분에 감동 가운데 아침을 맞습니다.
어제 프로미스타까지 오지 못하고 전 마을에 쉬어 이런 일출과 아침 안개 속 길을 맞이할 수 있네요.
좋은 코스입니다.

한참을 걷고 아침 식사를 프로미스타의 바에서 하고 나서 컨디션 좋은 걸음을 걸으며 한결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쩌다 일상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생명보험을 들어놓은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네요.
한결이는 아버지 때에 없던 것을 자기 때에 경험하니 30년 후에 자기 아이들은 또 어떤 세계에 있을까 가끔 궁금하다고 합니다.
아버지 때는 스마트 폰을 생각도 못했는데 다음 세대는 어떨까 궁금하다는 거지요.
그러니 한결이가 처음 스마트폰을 가졌을 때가 떠오릅니다.
Secondary school에 들어가던 9학년 때지요.
스마트폰 노래를 하는데 사주지 않으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인데 그것도 못 들어 주냐고 했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웃었습니다.ㅎ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그로부터 6년, 1년에 1000불씩 스마트폰 요금을 내가 내주고 있는 겁니다.^^
듣던 한결이는 자기가 돈을 벌게 되면 아버지의 스마트폰 요금을 다 내주겠답니다.
그래서 생명보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지요.
별의 별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다하게 되는 순례길입니다.

오후 2시가 되어 20여Km를 넘는 길을 걷고 지쳐갈 즈음 마지막 마을까지 힘내서 더 걷기로 하고 문정희의 '먼 길'을 한결이에게 소개해 줍니다.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 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 를 발음해 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가슴 저린 시지요.
그 '먼 길'을 외우며 마지막 6Km를 걷는데 늘 뒤서던 한결이가 쫒아와 나에게 힘드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합니다.
참내,ㅎ 한결이가 홀로 걷는 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짠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1시간여 동안 소돔과 고모라의 전쟁 이야기에서부터 아브라함이 맞이한 멜기세덱과 손님 접대 이야기, 하갈과 이스마엘 이야기까지 정신없이 쏟아내며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멀리 마을이 보입니다.
그렇게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이야기가 나에게 있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꽉 찬 하루가 고맙습니다.

목적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3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또 알베르게가 만원입니다, 이런!ㅠ
물론 전 마을 알베르게에서 쉬었으면 되었겠지만 이렇게 마지막 걸음을 함께 넘을 수 있어 뿌듯하기도 했지요.
다행히 비싼 호스텔 45불짜리 더블룸, 그것도 마지막 남은 것을 구할 수 있어 노숙을 면합니다.
대가를 치르지만 고맙습니다.
내일부터는 더 일찍, 늦어도 6시에는 길을 시작하자고 한결이와 약속을 합니다.
여름 순례길은 새벽 6시 전에 출발하고 6시간 내지 7시간을 걸어 일찍 걸음을 멈추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인생에 정답이 없지만 말이지요.
굿나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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