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20170513(#산티아고 12일) 뛰는 것이 편해 (art

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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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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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산티아고 12일) 뛰는 것이 편해

● 20170513(#산티아고 12일) 산토 도밍고 - 벨로라도 :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편해

산토 도밍고의 알베르게는 상황이 좋습니다.
성당 앞의 알베르게는 공립인데 주방과 휴게 시설도 좋고 규모도 있습니다.
근데 아뿔싸, 금요일이라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산토 도밍고의 휴일입니다.
마켓이 문을 다 닫아 버린 겁니다.
이 좋은 알베르게에서 밥을 해먹지 못하게 되었네요.
주방을 뒤지니 쌀이 조금 남아 있어 밥을 하고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던 스페인 라면에 마늘과 양파와 고추가루로 국물을 내어 저녁을 대신 합니다.
나가 먹자고 해도 오늘 한 일이 없다고 한결이가 고개를 젓습니다.
내가 더 미안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참....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 역시 아침 7시에는 모두 일어나야 하고 8시에는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어제 문을 연 중국 마켓을 찾아 준비한 과일과 빵, 미숫가루로 아침을 챙겨 먹고 출발했습니다.
어제 비가 많이 온 탓인지 하늘은 맑은데 기온이 낮습니다.
길 위에 번지는 아침햇살과 함께 옮기는 걸음이 상쾌하네요.
한참을 걷는데 한결이가 먼저 와 말을 건넵니다.
노아의 뜻이 뭐라고 했냐구요.
위로지요.
가인의 범죄로 저주받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노아입니다.
그 위로를 순례자들은 길 위에서 만나지요.
우리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한결이가 그럽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구요.
하루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어제와 같은 길인데 어제는 왜 그런지 짜증이 나고 불평과 원망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참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결이의 숨소리가 달라져 있습니다.
산티아고에 가 보았자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가냐며 억지로 걸었는데 오늘은 알아차려지는 게 있다구요.
그게 뭐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이 산티아고가 주는 선물이랍니다.
와! ㅎ
그래서 오늘부터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글을 써보겠답니다.
지금까지는 일기를 썼지만 말이죠.
지금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구요.
한국말로 잘 표현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선물"이랍니다.
내용인즉, '사람들은 미래를 모르고 산다. 과거가 현재이고 또 그 현재가 미래가 된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선물이고 과거의 수고 말고는 없다' 그럽니다.

아! 한국말로 잘 표현은 못하지만 한결이가 드디어 "지금"을 만나가네요.
산티아고 가는 길 위의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보는 것... 고맙습니다.
한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안에 반성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삶의 비밀은 저절로 풀리는데 왜 난 여전히 조급할까 하구요
길에 대한 믿음이 삶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요.
시간이 지나고 압력이 차면 발효는 일어나는 '자연'입니다
자고 깨니 저절로 찾아오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바라보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잠시 쉬는 틈에 어께를 아파하기에 좀 만져주려 했더니 하지마 하지마 만지지 마! 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만지면 더 아프니 그냥 내버려 두라구요.
바를 찾지 못해 점심 대신 내 놓은 미숫가루 앞에서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답답함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냥 두어야겠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ㅎ
그냥 두니 잘 알아서 합니다.^^

한결이의 걸음이 뒤뚱 거리니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한마디씩 묻습니다.
그리고 "Oh poor boy"라며 연신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오늘은 그래도 20Km까지는 잘 걸었고 25Km를 채워 오후 2시 전에 목표했던 벨로라도에 도착했습니다.
막판에는 나보다 앞서 막 뛰어갑니다.
뒤뚱뒤뚱...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플까 싶습니다.
스스로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거지요.
말로는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어차피 아플거면 한방에 아프자고 발이 아파 허벅지로 걷는다구요.
함께 걸으며 한결이가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구나 알아차립니다.
발이 시리다고 하고 발이 잘 붓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길에 서보니 몸의 신호도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한결이의 순례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일 서늘한 바람과 함께 걸었습니다.
바람막이 옷을 입고도 덥지가 않았으니까요.
이런 날씨도 있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구릉을 걷다 고개를 지나니 마술처럼 마을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오늘 길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돌아보니 오늘 코스가 지난 순례길에 가장 힘든 고비였습니다.
안개도 자욱했구요.
아마 너무 힘들어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나 봅니다.
망가진 발을 견딜 수 없어 벨로라도에서 하루를 쉬었었지요.
숨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그 길, 오늘은 낙원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한결이가 노아의 이름 뜻을 물어오니 노아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 보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도 온갖 걱정과 염려가 있었을 겁니다.
‘이거 만든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에서부터 시작해서 비는 얼마나 올까, 그 많은 짐승은 뭘로 먹이지, 사자와 양이 잘 지낼까... 그랬더니 한결이가 노아는 호랑이도 본적이 없었을 거라고 맞장구를 칩니다.ㅎ
다 원역사, 창조의 상징과 유비이지요.
노아가 방주를 짓고 나니 모든 동물들이 다 노아에게로 왔다고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나에게로 사람이 찾아오고 나에게로 일이 일어나다니 얼마나 큰 신비인지 모릅니다.
한결이가 내 아들로 찾아오다니요!
그렇게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삶은 찾아옵니다.
그런데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쩔까 했더니 한결이가 끼어듭니다.
그냥 지나가지요.
ㅋㅋ 맞습니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해 찾아온 삶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내 버리는 거지요.

그 노아의 방주 안에는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그 좁은 공간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있었지요.
부정한 짐승과 깨끗한 짐승이, 사자와 양이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더하고 뺄 수 없는 것이 모두가 내가 경험하는 삶입니다.
모두 그것으로 맞이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방주이고 삶이고 나의 순례길, 까미노입니다.

물론 그 방주가 좋다고 방주에서 영원히 있을 수 없지요.
때가 되면 거기서도 나와야 합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먼저 예배를 드리고 무지개를 만나지요.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구름과 비가 없이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홍수입니다.
그것을 지나 드리는 그들의 제사, 예배는 삶의 서비스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산제사이지요.

예배 이야기와 나온 김에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한결이게도 전합니다.
진짜 예배는 일요일 11시에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예배는 서비스입니다.
봉사지요.
지금 나의 바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의 일에 정성을 다해 이웃과 자연과 신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그렇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지옥은 없는거지요.
천국과 지옥은 시간과 공간이 아니니 말입니다.
있다면 지금이 천국이고 지옥입니다.
한결이가 알아듣는지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러니 어디를 살아야할까요.
순례길이지요.

파란 하늘과 흰구름, 토요일 오후의 벨로라도 광장의 고요와 여유가 환상적입니다.
광장 벤치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나의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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