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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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산티아고 6일) 가야지 어떻게?  
● 20170507(#산티아고 6일) 오바노스 - 빌라추에타 : 가야지 어떻게?



어제 '용서의 언덕'을 오르는 길에 저 멀리 4시간여 걸어 닿을 언덕을 바라보며 한결이가 다른 이름을 짓고 싶답니다.
‘용서의 언덕’은 꼭 무슨 벌을 받는 기분이어 싫다고, 저기 오르면 무슨 물바가지를 뒤집어 써야할 느낌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름답답니다.
그보다는 '바람의 언덕'이 좋겠다구요.
순례자들이 바람이니까요.
그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숨이고, Hope이고, Wish이고, Desire입니다.
오늘 그 길에 서 있습니다.

까미노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용서의 언덕’ 위의 조형물에는 "Where the route of the wind crosses that of the star"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별들의 길과 바람의 길이 만나네요.
우리는 그 길을 따라 흐릅니다.
예전에 그곳에 성당과 병원이 있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여기까지 이르면 미사를 드리고 용서의 은혜를 받아 순례자들은 기쁨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무엇을 용서받고 용서할까 돌아봅니다.
걷는 것 자체로 정화와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얼려주지요.
용서가 제일 쉽습니다.
그런데 그 용서의 길을 택하지 못해 죄이고 더 큰 고통 속에 있지요.
대가를 치르는 인생입니다.

한결이와 함께 용서의 언덕을 넘어 오바노스 마을의 전설인 사랑을 베풀다 죽은 공주의 이야기를 하며 사랑의 전당 오바노스에 이르렀습니다.
한결이가 잘 걸어 기특해 복잡한 알베르게가 아닌 특별히 조용한 까사(팬션같은 곳)를 숙소로 정했습니다.
하루 쉬고 싶기도 하구요.
이곳 알베르게에 주방이 없어서 빰쁠로냐에서부터 지고 온 쌀로 밥을 하지 못해 주방을 사용할 수 있는 까사를 찾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비용으로 하자면 알베르게는 아침을 포함해 12유로 정도, 주방이 없으니 레스토랑 순례자 메뉴가 11유로이니 총 44유로 정도 들게 됩니다.
여기 까사는 시설이 좋고 욕실이 딸린 더블룸이 45불이었지요.
그러니 장을 보는 비용만 제하면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지출되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조용히 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구요.
물론 알베르게 순례자들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씻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을 보러 나왔는데 아뿔싸 토요일입니다.
슈퍼가 문을 닫았습니다.
스페인은 주말과 휴일에 가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특히 시골은요.
다행히 쌀이 있었고 빰쁠로냐애서 가지고 온 라면과 마늘이 있었습니다.
마늘을 까서 라면 스프와 함께 국물을 내고 밥을 하고 라면을 끓였지요.
아침은 토론토에서 가자고 온 진짜 라면 스프로 국물을 내서 남은 밥을 먹기로 합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라면 스프가 효자 노릇을 합니다.
까미노에서 주말에 식사 계획을 세울 때 이런 주의가 필요하답니다.

나 혼자 걷는 까미노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일, 7시까지 자고 천천히 준비해 해가 중천인 9시에 길을 시작했습니다.
나도 3일 잠을 자지 못한 피로도 풀었구요
한결이는 아름다운 스페인 시골 마을을 지나면서 이런 곳에 살면 시인이 되겠답니다.
이런! 한결이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즐 몰랐습니다.ㅎ
시를 지어보라니 또 합니다.
'겉은 오래된 집들, 속은 새로운 사람들, 준비가 되었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참 깜놀했답니다.
그렇게 편하고 신나게 출발한 길, 날씨도 최고였습니다.
어느새 또 하나의 까미노의 상징인 ‘왕비의 다리’도 지나고 편안한 들길이 이어집니다.
꽃가루가 눈처럼 날리고 새소리가 정겹습니다.

악은 어디서, 왜 생겼을까? 한결이에게 물음을 줍니다.
철학적으로도 Good and Evil은 오래되고도 중요한 물음이지요.
출애굽의 교과서인 창세기에서도 그 물음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출애굽의 물음으로 본다면 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하나님이 악을 만드셨는지는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에 악이 이미 있다는 삶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거지요.
이미 있는 악을 넘어서기 위해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원래 히브리인들의 생각에 사탄은 악마라기보다는 대항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헤겔적으로 말하면 변증법이지요.
성장하고 진보해 가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선악과가 사실 그렇습니다.
원래 선악은 없었는데 그런 가치를 선택한 것입니다.
'생각'입니다.
'사실'은 옳고 그르지 않고 모두가 좋습니다.
악은 선악과에서 시작하는 상대의 세계인 것이지요.

뱀의 물음은 있는 것을 찾지 않고 없는 것을 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주셨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또 반대로 결핍을 보게 함으로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모든 진보는 결핍에서 시작되듯이 말입니다.
심지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들이 없는 것에서 그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뱀은 지혜의 상징이 되기로 하는 거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결이는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서 사람들이 여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해 왔느냐고 묻습니다.
한결이는 Feminism이 궁금했나 봅니다.
성경에서 성차별의 근거들이 나오니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지요.
하와에 대한 그릇된 이해입니다.
여자가 늦게 창조 되었다고,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뱀의 유혹에 빠졌으니 열등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창조되었으니 더 완전하고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니 흙보다 더 진보되었고 심장을 보호하는 생명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선악과를 먹을 만큼 호기심과 지혜와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는 존재가 여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 열등하고 우등하고의 문제가 아닌데 그렇게 해석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시간이 흐르니 한결이의 컨디션이 또 떨어집니다.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한결이가 힘들어 하니 내 아픈 것은 싹 사라지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참 한계가 없는 것 같아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마 혼자였으면 종일 힘겨운 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길이 너무 아름다웠고 날씨가 걸음을 도와주었습니다.
비라도 오셨으면 어쩔 뻔했는지 모릅니다.
한결이가 숨도 못쉬고 걸음도 못 옮기면서 나 반은 죽었으니 상관 말고 먼저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만 멈추고 쉴까 했더니 또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습니다.
가야지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면서 한걸음 걸음을 때며 신음과 한숨을 내는데 내 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정했던 에스텔라를 4Km여 남긴 마을 빌라추에타에 알베르게가 문을 열어 멈추었네요.
다행입니다.

이렇게 걷고 걸어 착해지고 순해지고 넉넉해집니다.
죽어서야 살 수 있어 부활이 가능하지요.
그렇게 죽어 보는 길, 순례의 여정입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야지 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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