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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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7(금)
IMG_2462.JPG (155KB, DN:19)
20170506(#산티아고 5일) 역지사지  
● 20170506(#산티아고 5일) 빰쁠로냐 - 오바노스 : 역지사지



감사하게도 비가 그쳤습니다.
밤새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니 말끔합니다.
더 맑고 환해졌습니다.
세탁기 순서를 기다리느라 12시가 넘어 잠들고 피곤한 순례자들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여전히 6시에 기상 나팔소리는 울리고 몸을 일으켜 감자와 계란을 삶아 아침과 점심을 준비합니다.
사람이 많지만 생각보다 아침 주방은 한가하네요.
나이든 노부부가 함께 걷고 아침을 준비하며 알베르게 생활을 하는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활기보다 오히려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나는 어서 준비해 짐을 지고 길을 떠나고 싶은데 한결이는 침대에서 일기를 쓰는지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일상에서의 그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지요.ㅎ
나는 여전히 그런 그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심도 그러하겠지요.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아침, 참 좋습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답니다.
그런 아침을 따라 함참을 걷고 파란 하늘 밝은 햇살 아래 낯선 마을 공원에 앉아 오렌지와 자두를 아들과 같아 까먹는 맛도 천국입니다.
까미노에서 에스프레소만 좋은게 아니네요.
나 혼자였으면 하지 못했을 호사입니다.

오늘은 내가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발에 물집이 잡히고 등산화에 쓸리는지 발목이 욱신거려 걷기가 많이 힘이 듭니다.
대신 한결이는 날아가기 시작하네요.
몸이 걷는데 적응하는 건지 많이 수월해 보입니다.
한결이는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느니 짐을 더 지겠다고 무거운 짐을 달라고 합니다.
또 친구들과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면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해 죽겠다는 친구들을 다 데리고 순례길에 와야겠다고 합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불평할게 하나도 없다구요.
공부하는게 제일 쉽답니다.^^
역지사지네요.
초반에 한결이를 위해 짐을 대신 지고 발에 익숙한 목숨 같은 신발도 내주고 그렇게 힘을 빼고 나니 이제 한결이가 해주겠다는 겁니다.
인생이지요.
나 혼자였으면 수월하게 빨랐을 길이지만 함께하니 더디고 느리고.. 그렇지만 또 덕분에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느낍니다.
아들을 다 키우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 순례길에 들어서겠습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넘어서는 한 걸음 한 걸음입니다.

한결이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지으시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물으니 또 갸우뚱합니다.
복을 주신 거지요.
복을 받을 복덩이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을 믿으려니 큰 코를 다치고 맙니다.
그런 기복이 되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독이지요.
하나님 주신 처음 복은 세상 만물을 사람에게 밥으로 주신 것입니다.
다스리고 정복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그 모두를 나를 살리는 밥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밥은 내 생명의 근원이니 잘 살피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럴지 못하면 내가 살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랬더니 한결이가 눈을 반짝 뜨면서 “오늘 순례길을 밥으로 삼으라는 말씀인가요?” 그럽니다.
허참, 허를 찔렸습니다.
그렇지요.
순례길이 밥이지요.
고통도 밥이고 슬픔도 밥이고 아픔도 밥입니다.
기쁨과 감사도 그렇습니다.
다 나를 살리는 소중한 밥입니다.
그렇구 말구요.

이렇게 창세기는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의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노예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라는 거지요.
하나님은 나를 나답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을 이용해 무엇을 하거나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태초에 그 하나님이십니다.
열두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병을 고쳐주겠다고 속이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했다고 하시지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하와가 나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나와 보아야 그 사랑을 알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돌아온 둘째아들 비유가 딱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한결이에게 전해지니 눈이 둥그레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적이지요.
사람이 자기를 넘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성경에 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있을까?
형이 동생을 죽인 이야기 말입니다.
그 또한 오늘 나의 이야기니 그렇습니다.
사회 역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그 이야기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계급적 착취가 시작되는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대결입니다.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사람 위에 사람이 없는 유일신 체제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바알과 아세라 농경신 체제의 대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결이에게는 다르게 묻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고 아벨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이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핵심이고 화와 죄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있는 거지요.
그것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제사를 받고 받지 않고는 사람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요.
그런데 가인은 그것을 상관합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인의 제사는 이미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제사가 받아들여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자기밖에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사는 누구의 요구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오늘 내가 걷는 걸음과 나의 일이 그러합니다.
나는 내 일을, 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감사와 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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