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20160102(#산티아고 37일 +95.4km) 나의 끝은? (art

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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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5/2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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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2(#산티아고 37일 +95.4km) 나의 끝은?

● 20160102(#산티아고 37일 +95.4km) 올베이로아 - 피스테라 : 길의 끝은 바다, 나의 끝은 기쁨과 감사

내일 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데 오늘만 화창한 날이라 이 좋은 풍광의 길을 빗속에서 보내기 아쉬워 오늘 40km를 걷자 생각하고 이른 아침 어두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큰 비만 오지 않았지 갈리시아에 랜덤으로 내리시는 소나기는 어쩔 수가 없네요.ㅎ

오늘 출발부터 아름다운 아침 무지개를 만났습니다.
등 뒤에서 햇살이 퍼지는데 앞을 보니 무지개가 찬란합니다.
아침 무지개는 처음이라지요.
그런데 감탄하고 있는 사이, 아쁠싸! 곧 소나기가 쏟아지십니다.
우비를 벗은지 5분도 아니되었는데요.
역시 아름다움은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앞에 더 선명한 무지개가 피어오르자 일단 우비부터 챙기고 사진을 찍었답니다.
역시나 또 퍼부으시는 소나기, 무지개는 이슬비나 구름에 피지 않고 선명한 만큼의 큰비와 함께라는 머리로만 알던 사실을 오늘 새삼 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네요.
비야 와라, 바람아 불어라! 그래야 무지개가 피지!
그리고 피스테라에 도착할 즈음 소나기가 지나가시더니 뒤로 무지개들이 막 피어나셨습니다.
나를 지나간 소나기지요.
오늘 길은 무지개로 시작해서 무지개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아름다움은 추함과 함께 있습니다.
기쁨은 슬픔과 함께 있고 감사는 원망과 사랑은 미움과 함께 있지요.
그러니 그것이 찾아올 때 그것으로 만나 줍니다.

오늘은 일찍 Bar를 만나 커피를 하고 몇가지 물건을 샀는데 주인장이 계산을 못하는 겁니다.
보다 못해 내가 앞에서 10.5유로라고 알려주고 20유로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을 있다가 10유로짜리와 4.5유로 동전을 건네주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잠시(!) 망설이다가 No라고 하며 10유로를 밀어주고 5유로를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주인장 얼굴이 활짝! 고맙고 좋아서 어쩔줄 모릅니다.
나야 당연한 일을 했지만 그래서 나도 종일 기분이 상쾌합니다.
알든 모르든 그냥 받았으면 종일 찜찜했을 거예요.
우리 착하게 삽시다.
정말 캐나다 사람들도 그렇고 유럽 사람들 계산이 많이 둔해요.
총명한 우리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길을 이어 이어 가다가 코르쿠비온에 들어서자 바다가 확 다가옵니다.
그리고 다시 산길을 더 걷다 피스테라에 이르니 탁 트인 바다 앞에 문득 서버렸습니다.
아, 길의 끝은 바다네요.
그리고 나의 끝은? 기쁨과 감사와 찬양입니다.
기쁨이라 표현했지만 더 희열과 환희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까미노에 오기 전 떼제에서도, 플럼 빌리지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Joy(기쁨)였더랬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천국은 성령 안에 있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산티아고 성당 앞에 설 때보다 땅끝인 바다 앞에 서니 눈시울이 젖을 정도로 뭉클해지니 난 역시 자연 친화도가 높은 사람인 모양입니다.

피스테라로 들어가는 까미노도 백사장을 끼고 있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여름 백사장에 비키니 스페인 미녀들 틈에 900km 비바람에 절어 있는 새까만 순례자들이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오버일까요?
한 겨울에도 까미노를 걸어온 순례자 표시가 금방 나 피스테라에 겨울 휴가를 보내러 온 관광객들이 격려와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참 고맙지요.
피스테라에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숙소를 정하고 바로 등대를 향했습니다.
오고 가고 6km이니 2시간은 걸리는 길이니 말입니다.

갈리시아의 날씨가 그렇듯 이곳 등대도 늘 비바람이 치는데 오늘 날씨가 화창해 비는 오지 않았지만 화려한 석양은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내일 예보대로 곧 스톰이 몰려올 듯한 회색 바다가 한가득 펼쳐졌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바람이 붑니다.
그 등대 앞 바위 끝에 가서 앉으니 숨쉬기도 힘들고 귀가 멍할 정도로 바람소리도 가득합니다.
그 바람을 맞으며 앉아 한참을 기도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충만했지요.
그 바람이 하나님이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내가 아니었으니까요.

명상하다 기도를 이어갑니다.
나에게 늘 설레고 가슴 뛰는 오늘을 살도록 함께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고국의 민주화와 갈라진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900km, 30여일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감사와 감동의 눈물도 살짝 나왔답니다.
여기까지 지켜주신 사랑이고 기쁨입니다.
나의 까미노, 무엇보다 기도를 배우는 시간이었고 나의 묵은 밭을 기경하는 쟁기질이었습니다.

네. 모든 길은 끝나고 새로운 길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함께 길을 걸어주시고 응원과 지지를 해주신 벗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아라."(예레미야 4:3)

묵은 땅에 심을 수 없지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술이 못쓰게 되지요. 부대도 터져 못쓰게 됩니다. 가시덤불은 걷어 내야지요. 그래야 합니다. 새해라고 하지만 마음과 의식이 제자리이면 여전히 헌해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입니다. : 헌해, 묵은 땅을 갈아내고 가시덤불을 걷어내게 하소서.

번호	제 목	이름	첨부	작성일	조회

400	20160105(#산티아고 40일 900km) 까미노는	깊은산		2016/06/20	1304

399	20160104(#산티아고 39일 +134.4km) 너의 빛!	깊은산		2016/06/12	1351

398	20160103(#산티아고 38일+105.4km) 왜 걷고 있지?	깊은산		2016/06/01	1458

397	20160102(#산티아고 37일 +95.4km) 나의 끝은?	깊은산		2016/05/26	1319

396	20160101(#산티아고 36일 +54.4km) 가라 했으면	깊은산		2016/05/24	1106

395	20151231(#산티아고 35일 +21km) 걷고 기도하기	깊은산		2016/05/18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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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20151227(#산티아고 31일 39.5km) 조심	깊은산		2016/04/29	1130

390	20151226(#산티아고 30일 68.1km) 어루만지기	깊은산		2016/04/26	1168

389	20151225(#산티아고 29일 93.2km) 크리스마스	깊은산		2016/04/24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