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5/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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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0(#산티아고 34일 0km) 없이 있음.  


● 20151230(#산티아고 34일 0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산티아고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온 것보다 오는 길이 더 좋았던 것은 내 까미노의 목적이 산티아고 대성당이 아니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까미노는 목적지로 향해 가는 걸음이 아니라 그것을 향하기 시작하는 마음, 선택하는 과정, 걷는 길, 길에서 만나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사람들 그 모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천 년 전 가톨릭의 종교적 목적으로 순례가 시작되었을 때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를 지녔을지 모르지만 그 때도 아마 성당에 이르기 전에 순례자들 안의 죄와 미움과 아픔과 고통이 다 내려졌을 터입니다.
길을 걸어보니 알아지네요.

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것보다 길이 더 좋았다는 것은 천국보다 땅의 삶이 더 좋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이야기지요.
혁명의 완수보다 혁명에 이르기 위해 함께한 동지들과의 연대와 사랑과 나눔과 희망이 더 아름답듯이 말입니다.
혁명의 완수 후에는 또 다른 혁명의 완수를 향해 가야지요.
멈추어 버린 혁명은 이미 반동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천국이 좋으면 그냥 천국에 있지 땅에 올 이유가 없지요.
천사도 사람이 부러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 부러워서요.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신나하고 그런 것이 길이지요.
그 길을 재미나게 즐기는 거요.
그거 없으면 인생길의 재미가 없겠지요.
돌길과 언덕길이 없었으면 보드라운 흙길의 편안함을 알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오늘은 하루를 비우고 대성당의 안과 밖에 가만히 앉아 있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방송 촬영이 있는지 온 성당 안의 조명이 대낮같습니다.
고즈넉히 앉아서 기도하고 명상할 분위기가 아니네요.
까미노에서는 의미가 큰 대성당 아치도 수리 중이라 접근을 못하구요.
밖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당 구석의 조용한 방을 찾았는데 홀로 있기가 참 좋습니다.
내가 명상하고 앉았으니 옆으로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앉네요.
그들도 나와 동병상련이겠지요.

어제 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고 가슴은 슬픔 안에 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전해지는 말도 안되는 '위안부' 관련 한일 협정을 보면서 속이 상하고 우리 할머니들께 죄송해서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성당 안에 앉았으니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와 소녀들의 통곡 소리가 예레미야가 듣던 그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세월호 릴레이 단식 500일째를 산티아고에서 이어가며 기도하는데 30여일의 순간순간 감사와 위로와 기쁨과 아픔과 절망과 포기가 함께 떠올라 가슴이 저렸습니다.
앉아 기도하는 내내 가슴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걸어온 그만큼의 정성을 다 담아냅니다.

대성당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마 연말 미사가 방송 촬영 되는 듯한데 또 의식 중에 까미노, 산티아고, 코리아,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서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도 같고 가톨릭 의식을 잘 모르니 다 정확하지 않네요.
순례자를 위한 매일 정오 미사라기에는 대성당에 운집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성대합니다.
나는 방송 조명으로 눈부신 성당이 영 거슬리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네요.
산티아고 대성당은 5일후 스페인 땅끝인 피니스텔레를 다녀와 다시 찾아와야겠습니다.

그래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이 큰 성당에 가득하니 분위기는 뜨겁습니다.
뭔가 있을듯 해서 조금 더 있을까 나갈까 갈등했는데 있기를 잘했습니다.
보기 쉽지 않은 향로 미사가 진행이 되네요.
거대한 향로가 그네처럼 대성당 천정에 매달려 향을 뿌려줍니다.
순례자들의 몸을 씻기는 의미의 그런 의식이지요
자주 볼 수 없는 성대한 의식이었답니다.
참 고맙습니다.
나를 위하여.

다시 내가 30여일을 걸어 여기까지 왜 왔을까를 돌아봅니다.
내가 돌아갈 내 집과 그렇게 걸어서 찾은 나의 검은 손에 들고 있나?
걸으니 집이 보였고 마음을 다하니 검이 있더군요.^
내 까미노의 시작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 포럼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럼은 참석 안하게 되고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서부까지 800km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부터 다시 100여km를 더 걸어 스페인 땅끝인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더 갈 예정이지요.
그러니 비록 내 몸은 스페인을 걷지만 가슴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부산에서 신의주, 나진까지 걷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이제 곧 와야지요.
부산에서 나진까지 795km라고 하니 내가 한 달간 걸어온 길입니다.
그러니 끝나지 않는 길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스페인 사람들로 가득한 틈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참 생각 너머의 삶입니다.

사실 길 위에서 홀로 30여일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력이지요.
그리고 매일 매일 다른 길과 사람들이 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관계해야 하고 그 안에는 육체적인 고통과 인내가 있고 때로는 외롭고 아프고 허무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길을 즐겨왔지요.
길에서는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말입니다.
삶에, 길에 "예"할 뿐이지요.
그래서 순례자는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산티아고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까미노에서 만나고 며칠 안되어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고 자기 길을 떠난 태진씨가 묵시아에서 산티아고로 와 한달 만에 상봉합니다.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궁금하네요.
나는 내일 스페인 땅끝 묵시아를 향해 길을 다시 떠납니다.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으니 비 바람 소리가 참 좋습니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800km 32일을 걸어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러 하루를 비우고 오전 내내 성당 안에 앉아 세월호 참사와 고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기억하며 기도로 함께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해외동포 릴레이단식 500일째]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빛바랜 세월호 뺏지, 800km의 까미노(길)에서 햇빛과 비와 바람과 안개와 진흙을 나와 같이 온전히 맞으며 32일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산티아고 성당에 이 '세월호 뺏지'와 'Remember 0416 기억 팔찌'를 놓아두고 걸어온 그 길만큼 마음의 정성까지 내려놓습니다.
걸어온 그 만큼의 고통과 절망과 환희와 보람까지 다 담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를 가족의 품에 안겨 주소서!"
"내가 800Km의 순례의 길을 마치고 지나온 길을 이렇게 돌아보듯이 세월호 가족들이 지나온 험란한 시간을 함께 돌아보며 웃음짓게 하소서!"

(2015년 12월 30일, 스페인 'Camino de Santiago'에서 토론토 오동성)

"그들이 나를 부르기도 전에 내가 대답할 것이며 그들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내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이 흙을 먹고 살 것이다. 이와 같이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상하거나 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이사야 65:24-25)

산티아고에 이르러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시는 증거는 이제 더 이상 상하거나 해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입니다. : 주여 어린양을 잡아먹는 이리와 소를 해치는 사자와 사람을 무는 뱀들을 어찌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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