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20151226(#산티아고 30일 68.1km) 어루만지기 (art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4/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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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6(#산티아고 30일 68.1km) 어루만지기

● 20151226(#산티아고 30일 68.1km) 뽀르토마린 - 빨라스 데 레이 : 공손하게 어루만지기

걷기 30일째인 요즘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잘 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 잡니다.
9시쯤 잠이 들면 7시쯤에는 저절로 일어나지니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낮에 걸으며 기도하고 저녁에 글 쓰고 명상하고 밤에 자고 완전 신선이 따로 없네요.
오늘도 여명을 길에서 맞이하고 싶어 길을 서둘렀습니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분홍과 보라로 물들어 오는 하늘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전망 좋은 강가에 서서 밝아오는 하늘을 한참 바라봅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화려한 빛이 사라지네요.
그 순간만 허락된 비밀입니다.
길에 서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것이지요.
오후에 일찍 도착한 마을 시청 앞에서 맞이한 저녁노을도 여명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다시 떠난 길, 길을 가다가 지쳐 한계에 이르면 바람 가득한 이름 모를 고원에 홀로 앉아 주기도문 송을 부릅니다.
그럴 때 숨이 다시 쉬어지고 가슴이 찡합니다.
내 길이 삶이 이러하겠지요.
지치고 힘들면 가다가 쉬고 기대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예배합니다.
그게 진짜 예배지요.
삶의 위로가 넘치는 모든 순간입니다.

오늘은 공손하게 어루만지기를 초점으로 하루를 걷기로 합니다.
사뿐히 걷기, 주의깊게 듣기, 다정하게 바라보기, 공손하게 어루만지기가 내 일상의 제로 베이스, 처음으로 돌아가는 연습이지요.
그런데 몸이 힘들고 짐이 무거우니 자꾸 초점을 놓칩니다.
게다가 마을들을 몇 개 지나도 Bar들이 문을 안 열어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Bar를 들르지 못해 와이파이 사용 못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화장실을 갈 수가 없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마을 입구에서 자연과 함께했는데 마을에 들어서니 반갑게 문을 연 Bar가 기다리고 있네요.
물론 '자연과 함께'도 나쁘지 않습니다.
온통 소똥 염소 똥인데 사람 똥도 좀 섞어주면요.

힘들던 몸이 '자연과 함께'하고 에스프레소 한잔에 기운이 펄펄 나네요.
길 위에서 '자연과 함께'하고 나서 아, 천국이라고 하던 그녀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네. 순간 순간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찾아와 있습니다.
천국은 찾는 이들의 것이지요.
그러고 나니 이제 힘들어서가 아니라 길이 아까워 자주 멈춥니다.
쉼도 순례입니다.
하나 하나 공손히 받아 안지요.

다시 깨어 공손하게 어루만집니다.
밤새 나를 따뜻하게 덮어준 침낭과 목을 편하게 누여준 베개를, 종일 무거운 내 짐을 감싸 안아주는 배낭을, 내 몸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지팡이를, 700km가 넘는 길을 넉넉히 견디어준 신발과 내 발을 편하게 감싸준 양말을, 자주 빨아주지 못하는 옷들을, 그리고 내 발과 다리를 공손하게 어루만져줍니다.
사랑의 마음이지요.
대지와 풀에도 인사를 하고 엎드려 공손하게 어루만집니다.
그러면 내 안 어디선가 큰 감사와 사랑이 올라옵니다.
그런 사랑으로 살아야지요.
내가 이렇게 덕분에 삽니다.
윤택하게 말이지요.

오늘은 주방이 없는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서 이제 나가 레스토랑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멋진 디너를 하고 길에서 명상과 기도에 들었다 돌아오겠습니다.
이런 밤이 참 좋습니다.

굿나잇!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압박의 사슬을 풀어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며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굶주린 자에게 너희 음식을 나눠 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을 너희 집으로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도움이 필요한 너희 친척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어라."(이사야 58:6-7)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지요. 압박의 사슬을 풀어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고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해주고 굶주린 자와 집없는 자와 헐벗은 자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 주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