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4/22(금) IMG_8073.JPG (115KB, DN:72)

20151224(#산티아고 28일 115.6km) 성탄절 이브   ● 20151224(#산티아고 28일 115.6km) 트리아까스텔라 - 사리아 : 성탄절 이브, 나 홀로 길에 어제 일입니다. 산을 내려오며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2층 창문이 열리며 할머니 한 분이 잠깐 기다리라며 황급히 내려옵니다. 나는 무슨 일일까 하며 기다리는데 손에 들린 쟁반에 밀떡 같은 것이 있습니다. 먹으라는 거지요. 마침 지나가던 외국 여자 순례자도 붙잡는데 그녀는 배부르다며 그냥 지나갑니다. 난 마침 식당을 찾아야 하나 하고 있던 차에 주는 대로 받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다 먹고 나자 도네이션을 하라는 겁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네요. 나만 순진한 순례자였습니다. 알고 보니 순례자들 사이에 유명한 분이시더라구요. 까미노가 지나가는 순례자를 대접하는 예전 까미노가 아니지요. 아차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점심 대신 잘 먹었다 생각하고 도네이션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잘했다는 생각, 미안하다는 생각,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까지 오고 갑니다. 이왕에 일어난 일, 생각은 내가 선택하는 거지요. 물론 오 세브레이로 전 마을에서는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호두를 내주면서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해주던 넉넉한 인심도 있습니다. 넉넉하게 살아야지요. 문득 돌아보니 성탄절 이브네요. 교회에서 지내고 양로원에서 지내며 사람들과 어울리던 예년 성탄과는 달리 나홀로 길에 있습니다. 어디나 그렇지만 명절에 나그네는 더 홀로입니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가 주방이 없어 레스토랑을 찾아 나왔는데 그래도 문을 연 곳이 있어 순례자 메뉴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이 해주는 성탄 디너네요. 일찍 디너를 먹고 성당 앞 벤치에 앉았습니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라 바람은 불지만 날씨가 춥지 않아 좋습니다. 노숙하는 마음으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며 명상과 기도에 듭니다. 걸어갈 길이 있어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 인사하기 아픈 오늘이지만 그래도 좋은 세상 바라며 함께 살아가는 고마운 이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매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눕니다. 어제 홀로 독채를 낸 알베르게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았습니다. 길을 걷던 초기 쥐비리에서 머리를 깎았으니 20여일만이네요. 삭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많지는 않지만 세월호 참사 2주기에 토론토 집회에서 삭발을 한 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삭발을 이어갈 마음입니다. 머리를 깎으며 새 각오 새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합니다. 스스로 자기 생명까지 바쳐 범죄자가 된 그분처럼, 또 오늘의 그들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고 낙담치 않는 그대들은 이미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선택의 길, 야고보 땅으로 가는 관문인 사리아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두 가지 길이 있어 선택의 길이라고 하지요. 나는 더 먼 길, 사모스 수도원을 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서 깊은 사모아 수도원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거지요. 길 위에 더 있고 싶어서요. 그리고 내 경험상 멀고 험하고 좁은 길이 더 많은 선물을 줍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그 길에서 눈에 쉽게 보이는 밤이며 호두며 주웠습니다. 다른 길들은 이미 사람들의 손을 탔지요. 어제 저녁에 사 놓고 명상과 기도에 취해서 마시는 것을 잊어버려 무겁게 들고 온 맥주 안주로 그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행복한 음주 보행입니다. 카! 다 좋습니다. 예상대로 사모아를 들러 가는 시골길이 참 좋았습니다. 길에서 송아지만한 돼지가 먹어달라고 덤벼들고 풀어놓은 커다란 개와 닭과 고양이도 막 사람을 찾아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안 그런척 길을 함께 걷습니다. 파란 하늘과 햇살 아래 있다가 금방 비바람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그 사이 사이 명상으로 더 깊은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충분한 성탄절 전날을 걸었네요. 성탄, 거룩한 탄생이지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듯이 오늘 나도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머니가 낳은 나는 내가 아니지요. 진짜 나는 내가 낳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살에 성전에서 아버지의 집을 찾았듯이 말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매일 크리스마스!! "그는 연한 순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주 앞에서 자랐으니 그에게는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사람들 중에 그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는 범죄하거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으나 악인들처럼 죽음을 당하여 부자의 묘실에 묻혔다. 그는 자기 영혼이 고통을 당해 얻어진 결과를 보고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은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강하고 위대한 자들의 영예를 그에게 주겠다. 그는 기꺼이 자기 생명을 바쳐 범죄자처럼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이 용서받도록 기도하였다.”(이사야 53:2-12) 대학시절 공활(공장활동, 노동자로 사는 삶을 체험하기 위한 위장 취업)에 들어가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선반 앞에 앉아 쇠를 깎으며 눈물로 암송한 구절입니다. 나의 구원을 찾아 하늘을 헤매던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이 외면하고 나도 귀히 여기지 않는 그가 나의 질병을 지고 나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나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 오늘 거룩한 성탄을 말하고 축하할 자격이 있는 자는 자기 생명을 바쳐 범죄자가 된 그의 곁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이 땅에 크리스마스는 없습니다. : 주여, 언제입니까? 주여, 이제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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