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4/21(목) IMG_8069.JPG (84KB, DN:65)

20151223(#산티아고 27일 134.1km) 놓쳐버린 길   ● 20151223(#산티아고 27일 134.1km) 오 세브레이로 - 트리아까스텔라 : 탓하다 놓쳐버린 길 어제 종일 쾌청하던 하늘이 오 세브레이로에 가까이 오니 구름에 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을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비바람으로 변했습니다. 지난밤 욕심 내 걸어 노숙을 하지 않았으면 오늘 이 비를 산 속에서 다 받아 안았을거예요. 그리고 하루만 늦었어도 이 비바람 속에 노숙이네요. 울어야할지 웃어야 할지. 덕분에 나는 너무 행복하고 편안한 산행을 했습니다.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10km 가까이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이었답니다. 소설 '순례자'를 쓴 파울로 코넬료는 이곳 오 세브레이로에서 검을 찾아 그의 순례길을 마칩니다. 그는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로 가는 까미노에 왔지요. 그런데 사실은 검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까미노를 걸으며 자신의 검으로 할 일을 찾아내니 검이 그에게로 옵니다. 내 해석으로는 그것은 코넬료의 꿈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었는데 현실의 제약과 두려움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지요. 검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 검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니 모든 제약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이 없어졌다고 꿈을 찾으러 다닙니다. 필요한 것은 ‘그 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지요. 우리 인생에 오 세브레이로가 있습니다. 늘 안개와 구름 속에 덮여 있는 신비한 산 위의 마을 오 세브레이로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세브레이로는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답게 그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합니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에 이런 날은 아무도 미사를 드리러 오지 않겠지 하며 하루 쉴 궁리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신심이 깊은 한 농부가 그 폭풍우를 뚫고 미사를 드리러 오는 겁니다. 신부님은 속으로 투덜대며 미사를 집례 했겠지요. 그런데 성찬식을 하는데 빵이 진짜 예수님의 살이 되고 포도주가 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름 없는 시골 농부의 신심에 하늘이 감동한 거지요.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에는 그 기적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짜 ‘기적이 뭘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기적은 그것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그리고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그 믿음을 실천하는 그 때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라 여기며 그것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미 그 기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되 피곤치 않고 낙심하지 않으면 그 상급이 크다 하신 것이지요. 오늘 내 삶은 내 믿음 그대로입니다. 그 명성 그대로 산꼭대기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의 알베르게에 비바람소리가 가득합니다. 내일 아침 산을 내려갈 수 있을까? 또 밤새 마음을 조릴 정도입니다. 역시나 아침, 바람은 조금 수그러들었는데 안개가 가득입니다. 구름이지요. 능선을 타는 참 아름다운 길을 걷는데 구름이 밀려오고 이슬비가 내립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비를 맞았습니다. 아예 비를 맞기 전에 우비를 꺼내 입었어야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이 그리 어둡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그 비를 다 맞으며 걸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슬비가 그치기는 커녕 더 세차지네요. 그러자 짜증과 원망과 불평이 올라옵니다. 탓을 하기 시작하지요. 갈리시아 지방 까미노는 이정표도 잘 해놓지 않고 비를 피할 쉼터는 커녕 의자 하나 해놓지 않았다고, 너무 불친절하다에서 시작해서 막 욕이 올라와 욕을 하다 산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능선과 비에 젖어 촉촉한 산길을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요구해서 얻는 것보다 감사해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우비를 입지 않아 비를 다 맞은 것은 나인데 비 피할 곳 하나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어만 사람들 탓을 했지요. 그래서 손해를 본 것은 나밖에 없습니다. 산을 내려오자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아지고 햇살은 눈이 부십니다. 물론 내가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검은 비구름이 걸쳐 있네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욕하고 왔는데 보란 듯이 밝은 날입니다. 내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내게 가득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 하루에게 미안합니다. 더 정신을 차려 남은 시간 감사로 채워가자는 신호로 받습니다. 오늘 트리아까스텔라의 알베르게는 나 홀로이네요. 주방도 쓸 수 있고 슈퍼마켓도 바로 옆이라 바로 장을 봐서 밥을 했습니다. 아, 며칠만의 밥인지. 냄비밥을 해 누릉지까지 마시고 나니 속이 확 풀립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지요. 홀로인 알베르게에서 노숙하는 마음으로 이 밤을 보내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 종은 지혜롭게 행할 것이며 크게 높임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랄 것이다. 이것은 그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 사람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민족들이 그를 보고 신기하게 여길 것이며 왕들이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니 그들이 전에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52:13-15) 나의 구원자는 그 모습이 너무 상해 사람같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위풍당당한 군마가 아니라 뒤뚱거리는 새끼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지요. 나는 지금 어디서 나의 구원을, 나의 꿈을 찾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그곳에 더럽고 누추한 곳에 누워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롭게 행할 것이고 잘난 입을 나불대며 자기 변명에 급급한 권력자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고 결국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낮은 곳에서 정의와 진실을 밝히시는 주님과 함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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