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20151221(#산티아고 25일 173.8km) 두번째 노숙 (art

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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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2016/4/15(금)

IMG_8063.JPG (81KB, DN:68)

20151221(#산티아고 25일 173.8km) 두번째 노숙

● 20151221(#산티아고 25일 173.8km) 폰페라다 - 트라바데로 : 아, 길이 좋아 길을 가다 길에서 두번째 노숙

까미노 '용서의 문'이 있는 빌라프란카에서 오늘 멈추었어야 했는데 길이 너무 좋아 계속 걸었더니 또 거의 40km, 알베르게가 없이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진짜 홈리스입니다.
그래도 처음 노숙보다는 상황이 좋습니다.
문 닫은 알베르게 처마 밑에 나무 의자까지 있구요.
샤워는 못했지만 건물 밖으로 수도꼭지가 있어 세수에 양치까지 하고 옷도 갈아입었습니다.
아침에 삶아 온 계란과 미숫가루로 저녁도 나쁘지 않게 해결했답니다.
오늘은 상현달이 휘엉청 밝습니다.
안개가 끼고 있지만 밤에 비만 오지 않으면 됩니다.
고속도로 옆이라 차 소음이 심하긴 하네요.

아침에 떠나 온 폰페라다 역시 까미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예전 템플 기사단의 수사들이 성체를 세워 산티아고를 향해 산을 넘어오는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곳이라고 하지요.
아침 일찍 길을 떠나오느라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는 도시답게 아름다운 성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도 내내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오후에 '용서의 문' 근처에 오면서 잠시 파란 하늘이 신비하게 드러나다 다시 안개가 가득합니다.
빌라프란카에 있는 '용서의 문'은 질병 등의 이유로 산티아고까지 가지 못하는 순례자가 이곳에 이르면 산티아고까지 간 것과 동일한 순례를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의 문'은 그다지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는 않네요.
그저 흔히 보는 성당문이었습니다.
이제 화려한 성당과 감동적인 건축물들을 너무 많이 본 모양입니다.ㅋ

빌라브란카를 나오는 길에 보니 <산티아고 200km> 이정표가 도로에 있습니다.
물론 차로 가는 길과 걸어서 가는 까미노는 거리 차이가 있지만 드디어 산티아고 가는 길이 100km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시방 느낌은 다시 아쉽습니다.
한창 길을 걷기 힘들던 초반에 100km를 넘으면서 물집 가득한 발로 "벌써 8분의 1일을 왔네. 길이 아까워 더 천천히 가야겠다."고 했더니 같이 길을 가던 희연씨가 '뭐 저런?'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느새 25일을 걸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진짜 천천히 가야겠네요.
길에서 배운 진리 하나, 느리게 가더라도 한걸음에 깨어 있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까미노는 몇km를 걸었느냐, 며칠을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경험하느냐지요.
삶에서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물론 800km, 30여 일을 길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압력이고 그 길을 다한 후에 찾아오는 환희는 길을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만요.
그러나 내일 끝날지 모르는 길을 지금 이 순간 걷는 것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합니다.
내 길의 끝은 내 발 밑에 있습니다.
아, 이렇게 알베르게를 가지 않고 노숙하니 시간이 참 많이 남습니다.
이제 스마트폰 밧데리가 되는만큼 성경 읽다가 달리는 차소리와 함께 기도와 명상에 들어야겠네요.
홀로의 시간은 홀로의 시간대로 좋습니다.
또 노숙은 하지 않길 바랬지만 다시 하게 되었으니 즐겨야지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삶'이 찾아온 것이니까요.
모두들 굿나잇!

참 내일 아들 한결이 생일이네요.
한결아, 아빠는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 노숙하며 아들 생일 축하한다.

"보라! 내가 새로운 일을 행하겠다. 이미 그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너희는 보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할 것이다. 내가 광야와 사막에 강물을 흐르게 하여 택한 내 백성들이 마시게 할 그 때에는 이리와 타조와 같은 들짐승도 나를 존경할 것이다."
(이사야 43:19-20)

오늘 광야와 사막을 걷는 중에 주의 강물을 마십니다. 새 일을 행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새 일에 내가 함께하게 하소서.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 아프고 슬픈 이들이 없는 기쁨의 세상을 나를 통해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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