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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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3/12(토)
IMG_7733.JPG (83KB, DN:40)
20151130(#산티아고 4일 707.6km) 고통으로  


● 20151130(#산티아고 4일 707.6km) 쥐비리 - 빰쁠로냐 : 고통으로 기도하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번 여정에 토론토와 베를린과 한국에서 온 4명의 한국인 순례자들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여자 순례자 1분이 동행을 하면서 사흘째 이 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지요.
게다가 한 달 가까이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을 여행하면서 한국말을 거의 쓰지 못했는데 스페인 까미노에 와서 한국말에 다시 젖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에 있는 느낌, 길도 한국의 산하와 너무 닮았고,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마음도 서로 맞아 불편함 없이 어울리는 도반이 되어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과 종교와 경험의 차이와 관계없이 말이지요.
어제 주방이 있는 쥐비리의 알베르게에서는 일요일이라 슈퍼마켓이 문을 열지 않아 장을 보지 못했지만 주방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뒤져서 밥도 같이 해먹습니다.
순례자들이 많은 여름이었으면 쉽지 않았을텐데 겨울에는 앞으로 가는 알베르게마다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매일 함께 걷고 저녁에는 왁자지껄 밥해먹고 엠티 온 느낌입니다
또 다른 힐링이지요.
물론 홀로 침묵으로 걷고 명상할 때는 또 그렇게 합니다.

떼제 공동체와 플럼 빌리지에서는 잠을 너무 자서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잤습니다.
그런데 까미노로 와 걷기 시작한 이후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설레서 그런건지 매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건지 피곤해서 잠이 쉬이 들지 못하는건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새벽 4시 수도원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삼 새벽에도 종이 울리는구나 알게 되었지요.
어차피 누워도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 명상과 기도에도 들어봅니다.
오늘 여정을 마치면 스페인의 대도시인 빰쁠로냐입니다.
아직은 페이스 조절을 잘하고 있는데 역시나 발에 물집이 간당간당합니다.

쥐비리, 참 아름다운 시골 마을입니다.
일교차가 큰 스페인의 산간지방 서리 내린 하얀 들판을 가로질러 하루를 엽니다.
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러면 가던 길 멈추고 양지 바른 담벼락에 앉아 햇볕도 쪼이고 명상에도 잠겨보지요.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고요 속에 며칠을 걷다가 대도시 빰쁠로냐의 소음 속으로 드니 귀가 멍합니다.
그동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지 할 정도네요.
지금까지 까미노에서는 순례자가 주인 대접을 받았는데 도시에 오니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시골 까미노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올라!"라고 인사를 나누고 “부엔 까미노!”라고 축복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람이 많은 대도시에서는 순례자는 방문객이나 여행객과 다름이 없거나 그저 자기들 중에 일부처럼 무관심합니다.
이렇게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의 거울을 새삼스레 보았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할까요?
빰쁠로냐에 들어서 화살표를 따라 한참을 신시가지를 지나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에 들어서니 다시 까미노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그나저나 결국은 발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산을 좋아하고 트레킹을 즐기지만 내 발이 거의 평발이라 늘 조금만 걸으면 발에 물집이 잡혀 고생을 한답니다.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하고 나면 발바닥이 다 벗겨졌다지요.
그 물집, 가뜩이나 평발에 아무리 조심해도 사흘째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No pain No glory’라고 했나요?
발가락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니 배낭 무게에 어깨가 아픈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아파도 신경을 그곳으로 돌리지 말자 해도 발바닥에 물이 돌아다니는 느낌은 아찔합니다.
네.
더 큰 문제가 생기면 이전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더 큰 사랑이 생기면 이전 미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다 고마울 뿐이지요.

그런데 또 우리 길가는 인생은 고통으로 기도합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 절로 찾아오는 기도가 있습니다.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은혜입니다.

그래도 내일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또 여호와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 것인가? 하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내가 가겠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대답하였다.”(이사야 6:8)

아멘 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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