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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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6/3/10(목)
IMG_7715.JPG (152KB, DN:47)
20151128(#산티아고 2일 749.4km) 피레네에 안기다.  


● 20151128(#산티아고 2일 749.4km)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 - 스페인 론셀바레스 : 눈 비 안개 속에 피레네에 안기다.

"길을 만납니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서는 산 정상 대피소 벽에 내가 한글로 대문짝만하게 써놓았습니다.
그렇지요.
이제 길을 만나기 시작했고 길이 알려주는 진실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40일 동안 갈 길이니 서둘지 않으려구요.
가다가 힘들면 엎어지기도 하고 신나면 뛰기도 하구요.
그래서 나를 만나는 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새벽에 눈을 뜨니 빗소리가 먼저 들립니다.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등록하면서도 제일 먼저 확인하고 들었던 소리,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이 Close(폐쇄)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난 피레네 산맥을 만나러 왔는데 넘을 수 없다니요.
청천벽력이었지요.
어떻게 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궁리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아침에 비까지 오는 겁니다.
어떡하지?
순례길 첫날부터 비를 맞이합니다.
이 비를 맞고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갈등을 하고 있는데 어제 밤늦게 도착한 또 다른 한국 여학생이 자기도 어떻게든 산맥을 넘고 싶다고 합니다.
오늘 못 넘으면 하루 더 있다가 라도 피레네를 넘고 싶다구요.
그런데 문제는 하루 더 기다려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겨울이라 길이 닫혔다는 거지요.
그래도 어떻게든 산맥을 넘고 싶다는 동지를 만나 용기백배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피레네를 안 넘을 수가요.
어떻게 온 길인데요.
다른 일행들을 우회로로 보내고 우리는 닫힌 산길로 길을 잡습니다.
죽어도 산에서 죽겠다는 거지요.

이른 아침에 올라가는데도 지나가는 차마다 염려하는 마음으로 길이 닫혔으니 가면 안된다고 말립니다.
어떤 남자는 하다 안되니 “F워드”까지 하시네요.
‘저걸 어떻게?’ 하다가 숨으로 돌아가 얼마나 염려가 되었으면 그랬을까 생각을 바꿉니다.
어떤 여자 분은 자기가 다시 차로 왔던 길을 데려다줄까라고 물어주기도 하다가 우리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Be careful(조심해)”이라고 행운을 빌어줍니다.
내게 찾아온 천사들입니다.
하나의 행동에 참 다양한 생각과 반응들을 알아차리게 되네요.
다 나의 거울이지요.

책임은 내가 지고 대가도 내가 치르고 보상도 내가 받는 거지요.
그리고 그 보상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게 되는 겁니다.
물론 큰 눈이 내리고 산이 얼어붙어 있으면 움직일 수 없겠지만 산을 아는 나는 오늘 같은 정도의 기온과 날씨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산을 넘겠다고 선택을 한거구요.
그렇게 산에 올라 안개와 구름과 비와 눈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보람과 기쁨과 행복과 감사를 만납니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눈비안개가 아니지요.
그건 내 삶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고 내가 지는 책임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내 삶입니다.
사람들은 진실로 염려해 길을 막습니다.
권력은 법과 원칙을 말하며 정해진 규범을 지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택을 하고 내 길을 갈 것이고 그 책임은 내가 지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눈 비 안개 속에 피레네에 안깁니다.
인생이지요.
한치 앞도 안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길은 있습니다.
한걸음 내딛으면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개 속의 길은 보이지 않고 늘 저만큼 떨어져 거기에 있습니다.
가야할 길 28km에서 지금 내가 걸어 8km 왔으면 20km가 남은 것이 아니라 그 20km를 나는 이미 온 것이지요.
8km도 걷지 않고 20km를 어떻게 가느냐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피레네를 우리 둘이서 전세 내었습니다.
오늘 피레네는 우리 둘만을 위해 있습니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걸리는 것도 없이 오직 걷는 그 일에 집중을 합니다.
Walking meditation(걷기 명상)이 저절로 됩니다.
걷다가 생각에 빠지면 다시 숨을 쉬는 나로 돌아와 숨을 주는 나를 만나 걷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는 걷고 있습니다.
걷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입니다.

서둘러갈 것 없습니다.
어차피 가게 될 길인데 왜 그리 도착하고 싶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길에서 눈을 들어 둘러보면 하늘이 보이고 낙엽이 보이고 풀이 보이고 꽃이 보이고 새가 보입니다.
그렇게 다 나를 위한 내 길의 벗입니다.
그처럼 인생에서 보아야할 것들이 있지요.
천천히 숨 쉬며 기쁘고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다 보고 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0일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하루 걷는 길이 보입니다.

길을 가다가 힘들면 주저앉아 잠시 쉬어주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새 힘이 찾아옵니다.
신기하지요.
먹고 나면 기운이 납니다.
숨을 쉬고 나면 차오르는 무엇이 있습니다.
안개와 빗속에서 피레네를 걷다가 마지막 내리막길에서 선물처럼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명상에 드니 여기가 천국이지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물어갑니다.

이렇게 함께 겨울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한국 사람이 남자 둘에 여자 둘입니다.
우리가 걷는 중 산티아고를 가는 사람들의 80%가 한국인으로 보면 됩니다.
둘은 20대 중반, 둘은 40대 중반입니다.
그런데 40대 중반 남자와 20대 중반 여자는 산을 넘고, 40대 여자와 20대 남자는 우회길을 택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평지 길은 오히려 비를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산 위에서는 구름 속을 걸었지요.
눈도 맞구요.
피레네를 넘을 때 어지간한 날씨면 산길을 택하길 추천합니다.
아, 그리고 20대 중반의 여자의 배낭에는 세월호 노란리본이 달려 있었고 40대 남자의 배낭에도 세월호 노랑 팔찌가 가리비와 함께 달려 있고 가슴에는 세월호 뺏지가 달려 있었습니다.

"너희 수많은 제물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너희가 숫양이나 짐승의 기름으로 드리는 제물에 이제 싫증이 났다.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양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누가 너희에게 그런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느냐? 너희는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너희는 무가치한 제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가 분향하는 것도 나는 싫어졌다. 너희가 초하루와 안식일과 그 밖의 명절을 지키고 종교적인 모임을 가지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구나.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와 그 밖에 지정된 명절을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되어 내가 감당하기에도 지쳤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도 내가 보지 않을 것이며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 손에는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의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너희는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고 내 앞에서 너희 악을 버리고 죄된 생활을 청산하라. 선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정의를 추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보호하고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이사야 1:11-1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름다운 제물도 향기로운 분향도 거룩한 명절도 아니고 악을 버리고 죄된 생활을 청산하여 선하고 정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 주님, 삶의 마당만 밟지 않고 중심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나의 순례길도 그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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