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
2015/1/28(수)
20140105 런던 테이트 브리튼, 테임즈 강, 위키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요6:29) - 예.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요. 그만큼의 빛을 안고 이제 일상이 그리워져 갑니다. 가장 행복할 때가 떠날 때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힘들고 불행해서 떠나는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라지요. 이제 그 일을 하러 갑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 하나님이 보내신 내 삶을 믿는 것, 모든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제 나 홀로 런던입니다.^^
아침에 공항으로 떠나는 벗들을 환송하며 또 다른 이별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도 짐을 챙겨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짐을 빅토리아 역, 버스 터미널에 맡기고 빅토리아 역 앞에 있는 위키드 전용 뮤지컬 극장에서 저녁 공연을 예매하고 고딕양식의 웅장한 국회의사당을 시작으로 테이트 브리튼을 찾다가 테임즈 강변을 본의 아니게 서너 시간을 걸었습니다.
아니 헤맸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은 테이트 브리튼을 충분히 느낍니다.
홀로의 하루 동안 참 많이 배웁니다.ㅎ

사실 빅토리아 역에서 가까운 국회의사당에서 시작해 테임즈 강변을 걸어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을 한번 더 보고 테임즈강 야경을 즐기다가 뮤지컬 위키드를 관람한 후에 야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느 페이스북 친구가 국회의사당에서 테임즈 강변을 15분 정도 걸으면 테이트 브리튼이 나온다고 이야기해준 것만 기억하고 테이트 브리튼에 가겠다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배를 타고 테이트 브리튼에 간다는 걸 연결시켜서 테이트 모던 건너편 즈음에 테이트 브리튼이 있겠다 막연히 생각한 거지요.
테임즈 강변을 홀로 걸으면서 룰루랄라 신이 났습니다.
낯선 공간에 홀로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도 런던, 테임즈 강변을 걷고 있다니...

15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1시간을 한겨울에 땀나게 걸어도 테이트 브리튼이 나올 기미가 없고 결국 테이트 모던 건너편 밀레니엄 다리까지 왔습니다.
멀리 런던 브릿지까지 보입니다.
그제사 사람들에게 물어 봅니다.
Do you know where is Tate Britain?
그런데 이상하게 반색하며 어딘지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이 없고 다들 갸우뚱합니다.
내 발음이 이상한가? 런던 사람이 런던의 유명한 미술관도 모르다니, 문화적인 수준이 낮구만... 별의별 생각을 다합니다.
결국 런던 브릿지까지 왔는데 테이트 브리튼이 없습니다. ㅠㅠ
하는 수 없이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 앉아 검색을 해봅니다.
헉!
반대로 왔습니다.
국회의사당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갔어야 하는데 왼쪽으로 걸어 오면서 난 테이트 브리튼에 갈 거야 그러고 있었던 거지요.

그야말로 “직진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부끄럽고 쪽팔리고...ㅠ
이러니 손발이 고생합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런던 사람이 테이트 브리튼도 모른다고 비웃고 있었네요.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묻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점검하지 않고 대충대충 살고 있는 내 모습입니다.
미안합니다.
그 황금같은 런던에서 세 시간을 무거운 등짐을 지고 걸으면서 보내고 말았다니요.
미리 검색만 하고 왔어도 되는데 대가가 참 큽니다.
그런데 그 덕에 테임즈 강에서 런던 사람들을 마주치고 강의 바람을 맞이하고 런던 브릿지도 보고 사진도 찍습니다.
덕분에 런던과 많이 친해졌습니다.
삶이 그러합니다.

데이트 브리튼, 16세기 영국 미술 작품부터 1960년대까지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현대 작품들은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름 동안 현대 미술관을 찾아 여행을 했다고 이제 고전 미술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이상한 병이 생기기 시작했네요.
사실적인 그림들이 심심하고 재미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림을 보면서 대칭미 균형미 세밀한 묘사... 이런 기준들이 있었을텐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그림에 부여된 의미를 찾기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세계를 보는 눈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테이트 브리튼에 있다가 문득 테이트 모던과 밀레니엄 브릿지의 야경이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요.ㅋ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와 지하철을 타고 블랙플라이어 역으로 와 런던 첫날의 기억을 더듬어 테이트 모던을 찾아갑니다.
낮에 테임즈 강변을 헤매고 다녔던 덕에 길이 아주 익숙해 있습니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다리를 건너 테이트 모던에 가 한 바퀴 돌고 레스토랑에 들어가 창가에 홀로 앉아 피시 앤 칩스와 맥주 한 병을 시켜 천천히 음미하며 런던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답니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 투어를 마치고 뮤지컬 Wicked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뮤지컬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연을 보는 눈도 없었을 뿐더러 그럴 여유가 없었지요.
그런데 내가 그것도 혼자, 낯선 런던에서... 전 세계 배우들이 모여 드는 그 한복판에서 뮤지컬을 보게 될줄을 몰랐지요.
내 스타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한번 해봅니다.^^
극장 안, 사방에서 들리는 영국 악센트의 영어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혼자 있으니 이왕이면 이쁜 영국 아가씨가 옆에 앉았으면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ㅋ
그런데 이쁜 아가씨가 앉긴 앉았는데 친구들과 함께 온 10살 정도의 말괄량이, 딱 말괄량이 삐삐 스타일입니다.
근데 앞줄에는 금발의 늘씬한 아가씨들이... ㅠ
월요일인데도 만석입니다.
6000석은 되는 듯한데 말입니다.

그리고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3시간의 장관이 꿈같이 지나갔습니다.
매일 수천의 관객이 맞이하면서도 몇 년간 성황리에 이어지는 공연이 과연 가능한 걸까요?
그런데 런던에서는 가능하네요.
배우들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연출과 무대의 정교함과 스케일이 대단했습니다.
또 극장에 관객이 가득하고 사랑을 받으니 일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요?
또 공연을 이렇게 펼치기에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과 수고를 했을까요?
하나하나 헤아려집니다.
이렇게 음악과 조명과 의상과 무대와 배우가 하나가 된 거대한 종합 예술입니다.
나의 삶도 그러하겠지요.

런던에서 사흘 머무는 동안 지하철을 탔던 노스악톤역, 그리고 빅토리아역으로 오면서 지하철을 갈아탄 노팅힐게이트역, 참 운치 있는 역이었습니다.
현대식 건물로 가득한 런던의 또 다른 특색 가운데 하나가 고색 찬연한 기차역의 운치였습니다.
참 멋집니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공항 가는 버스터미널에 이르러 버스표를 구하기 전에 커피도 사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여유를 부립니다.
그리고 짐을 찾으러 가는데 아뿔싸... 10분 차이로 짐 보관소의 문이 닫혀 버린 겁니다.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Close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또 그걸 확인하지 않고 내 맘대로 짐 보관소는 24시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또 한 번의 낭패입니다.
아침 7시까지 공항에 가야하는데 짐을 찾지 못하면 비행기를 놓치고 유럽에서 미아가 되고 마는 겁니다.
정말 확인하지 않고 점검하지 않고 덤벙대며 대충대충 사는 내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다른 일에는 그렇지 않은데 내 일만 그렇다고 핑계도 대어 보지만 아전인수지요.

물론 덕분에 문제 해결하느라 터미널 직원들을 찾아다니고 물어보고 부탁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또 새로운 관계를 할 수 있기도 했네요.
만일 이제는 망했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면 아직 런던 버스 터미널에서 홈리스가 되어서 거리를 헤매고 있었을 터입니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한 걸음씩을 걸어갑니다.
혼자 가는 길인데 자꾸 옆을 돌아봅니다.
누구를 찾는 걸까?
그러다 깜짝 놀라는 내가 있습니다.
런던의 마지막 밤입니다.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