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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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5(목)
20141227 퀼른 : 케테 콜비츠 뮤지엄, 콜룸바, 대성당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 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요4:34) - 나에게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으로 오늘을 삽니다.

베를린에서 쾰른으로 가는 독일 벌판이 참 아름답습니다.
틈틈이 머무는 역사에서 맞이하는 작은 도시들의 풍광도 독일스럽습니다.
나에게 독일스러움은 강인하고 깔끔한 그 무엇이 되고 있어요. ^^

도시를 이동하는 날은 아침 시간에 여유가 없습니다.
오늘은 베를린을 떠나 쾰른을 돌아보고 라인강의 공업도시 뒤셀도르프로 들어갑니다.
3일 묵었다고 베를린에 정이 든 것인지 시속 200km가 넘는 독일 고속열차 ICE(이케)를 타고 쾰른으로 가는 길이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다 준비되어 있는데 꼼짝하지 않는 것은 자기 손해일 뿐이지요.
이동하는 내내 아름답고 광활한 독일 들판을 보고 일출도 만나며 쾰른에 다가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들판과 도시가 온통 하얗습니다.
눈 내리는 유럽을 또 이렇게 보게 됩니다.
이제 진짜 겨울입니다.

케테 콜비츠,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여류화가라고 했는데, 누구지? 그림을 보니 익숙합니다.
아, 그! 독일 미술사의 로자 룩셈부르크라고도 하고 민중 예술의 어머니라고도 하는 그 분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콜비츠의 고백이지요.
80년대 한국 민중운동에서 판화로 익숙하게 만났던 그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아들과 손자를 잃었던 아픔으로 죽음과 늘 가까이 있고 그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난 받는 민중과 연대하는 길에 서 있던 그녀를 쾰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베를린에도 콜비츠의 박물관이 있지만 쾰른의 뮤지엄이 더 규모가 있고 작품도 많다고 합니다.
쾰른, 역에서 내리자 마자 마주하는 쾰른 대성당의 위엄에 당황하고 걷는 도심 길이 참 예뻐 놀라고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좋아 쾰른에 흠뻑 빠져갔습니다.
곳곳에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향긋한 빵 냄새와 커피 향기가 식욕을 당기고 예쁜 미술관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쇼핑센터에 들어가 올라가는 길이 설레였습니다.
단정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맞이해주는 Aufzug Zum Museum... 늘 같으면서 또 다른 느낌의 미술관들의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또 이런 여유를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대가를 치르었을까로 생각이 가다가 ‘일단 정지!’라고 스스로 멈춥니다.
그냥 누려야지요.^^

케테 콜비츠의 연작들의 곳곳에 머물러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아픔과 희망의 진실을 만납니다.
광주항쟁의 원혼들을 위로했던 80년대 민중 미술가들의 판화가 하나로 연결되고 2014년의 세월호의 절규와 죽음이 여기로 이어집니다.
특히 죽음 연작에서, 죽음과 인사를 나누고 죽음에게 자신과 자녀를 소개하고 죽음을 친구로 맞이하는 이들의 환영이 두려움을 넘어선 뭉클함으로 남아 아직도 가슴을 울립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가슴에 뭉쳐놓았던 원한들을 풀어 놓아 다니게 했을 터입니다.
나도 이리 울음이 터지는데 애가 탔던 그네들이 그녀를 통해 누릴 수 있던 자유가 어떠했을까 전해지니 참 고맙습니다.
끝까지 독재에 항거하고 히틀러에 저항하다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던 그녀는 찾아오는 죽음을 평생 갈망했던 대로 반갑게 맞이했다고 전해집니다.
"너희들 그리고 너희 자녀들과 작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우울하구나. 그러나 죽음에 대한 갈망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게 줄곧 행운을 가져다주었던 내 인생에 성호를 긋는다. 나는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떠나게 내버려두렴, 내 시대는 이제 다 지났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하나입니다.
나도 그런 무당이 되어 삶을 위로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제 그런 빚을 갚가 가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사회와 역사를 부둥켜안았던 20대, 마음공부와 영성을 찾았던 30대, 공동체와 일상을 만났던 40대, 그리고 나의 50대는 어디로 가게 될까? 콜비츠를 만나서 내가 다시 나의 길을 보니 그녀는 영원한 역사의 어머니가 되시네요.

그렇게 케테 콜비츠를 진하게 만나고 나와서 쾰른 도심에서 쾰른의 빵과 커피로 요기를 합니다.
한국의 시장통 먹자골목에서 떡볶기와 순대를 먹듯이 왁짜지껄하는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정신과 마음이 채워져도 먹어야 살게 되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또 함께 마음을 풀어내고 웃고 떠들어 봅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쾰른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콜롬바 뮤지엄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2009년에 수상한 스위스 바젤 출신의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가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건물 벽에도 온도가 있다고 했다 하지요.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성당의 기초를 그대로 살려서 현대식 건물을 이어 올린 그의 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전쟁의 상흔과 교훈이 남긴 온도와 그것을 빛과 숨으로 치유하고 보듬어 안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차가운 벽돌에 따뜻한 온기가 돌게 하는 듯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비움과 채움이, 이성과 감성이, 철학과 과학이, 종교와 예술이 어색하지 않게 물 흐르듯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이 거기에 있습니다.
한 귀퉁이에 새로 단장한 작은 성당이 단정하고 멋스러웠고 옛 성당의 기초에 벽들을 세워 올리고 벽돌에 틈새를 두어 빛과 바람이 들어와 전쟁의 상처를 쓰다듬어 줍니다.
이렇게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길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미워하고 질투하고 대결하며 살아갑니다.
아니, 오늘 내가 그렇습니다.

성당을 지나 따뜻한 분위기의 새 미술관은 리셉션부터 환영하는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멋스럽게 실용적으로 짜여진 개인 사물함에서부터 방문객들은 환대를 받습니다.
입구에서 꺾어져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앗! 하는 탄성과 함께 숨이 멎습니다.
계단과 복도는 그냥 걸어 올라가야만 하는 곳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직선으로 올려진 계단은 숨을 알아차리게 하고 가슴을 경건하게 합니다.
아무 장식도 되어 있지 않은 벽면과 천정으로부터 쏟아지는 자연스러운 조명은 하얀 벽의 단정함과 어우러져 삶의 기운을 붇돋아 주고 명상으로 들어서게 합니다.
명상은 숨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나를 씻는 것인데 그렇게 깨끗해져 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가며 씻어내고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니 또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하나로 연결된 15개의 전시관들 곳곳에 심어진 세심한 배려를 봅니다.
바닥의 높이가 다르고 천정의 높이가 또 다릅니다.
방마다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다르고 내부의 빛이 다릅니다.
수백년 전 성당의 유물과 현대의 전시물이 한 공간에 전시되어 빛을 발합니다.
안고 싶으면 또 알맞게 자리가 있고 또 몸을 폭 감싸고 얼마든지 앉아 쉴 공간도 있습니다.
곳곳의 전면 유리는 쾰른 시내와 전시관을 하나로 연결하고 차라리 쾰른 시내가 전시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곳은 삶이 전시되고 역사가 전시되고 인간의 철학과 정신이 보이는 집이었습니다.

내가 집을 짓고 산다면 이런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이런 곳이라면 영혼이 쉴 수 있을 듯합니다.

과거와 오늘과 내일이 하나로 만나는 콜룸바를 지나 600년간 지어졌다는 쾰른 대성당을 대하니 또 다른 탄성입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고 가히 고딕양식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대 건축물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힘이 있고 얼마나 돈이 있었으면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사실은 돈이 있다고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 안목과 그런 꿈이 이런 집입니다.
좁아터진 나의 마음이 쾰른에서 이렇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으로 오늘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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