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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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20/2/23(일)
20190618_173656.jpg (304KB, DN:10)
20190618(#남미 50일) 다시 쿠스코에서  


● 20190618(#남미 50일)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 - 쿠스코(Cusco) :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추픽추의 여정을 마치고 밤 8시50분 기차로 오얀타이탐보로 돌아왔습니다. 시골 밤 기차가 딱 2량입니다. 마추픽추까지 도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은 듯 차로 오얀타이탐보까지는 5시간이 걸리고 기차로는 1시간30분 걸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기차를 타기 원하지 않으면 오얀타이탐보에서 7시간 정도를 걸어서 마추픽추 아래 마을까지 오기도 한답니다. 마추픽추가 아직도 첩첩 산중 오지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산세가 그리 험하지요.

감사하게도 그 2량 기차에 맨 앞자리, 운전석처럼 앞이 통유리로 된 자리를 얻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고 보니 거꾸로 가더군요. 결국 맨 뒷자리에서 뒤를 보면서 가는 꼴이 되었습니다. 밤 열차니 눈 감고 자면서 가면 되지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잠시 눈을 붙이고 떴는데 보름달이 설 산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창밖의 풍경이 예술입니다. 왼쪽으로는 계곡물이 하얗게 넘실거리고 눈 앞 저편에는 설산에 달빛이 반사되고 있네요.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그 풍광을 보는데 잠이 싹 달아납니다. 황홀할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옆자리 앉은 백인 아가씨는 목도리로 눈을 칭칭 감고 입을 벌리고 자고 있습니다. 마추픽추가 많이 고되었던 모양입니다.

밤 10시 30분에 오얀타이탐보에 도착해서 30분 걸어 예약한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잘 쉬었습니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깨었지요. 꿈속인지 현실인지 가물가물하다 이곳은 페루, 오얀타이탐보지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 있지 묻다가 주섬주섬 일어나 아침을 먹습니다. 지금까지 숙소에서 먹은 아침 중에 가장 잘 나온 아침식사였답니다. 그리고 10솔에 택시를 합승해서 쿠스코로 오는데 너무 미안합니다. 기차는 50불이 넘으니 160솔 이상인데 말이죠. 많이 불공평합니다.

쿠스코로 돌아왔는데 컨디션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멍하고 축 쳐지는 게 몸이 마음 같지 않습니다. 다시 3300미터 고지대로 올라와서인지도 모르겠는데 어제 마추픽추에서 많이 무리를 하긴 한 듯합니다. 후폭풍을 감당해야지요. 그러면서도 남은 일정 궁리는 빼놓지 않습니다. 계획이 어중간해 쿠스코에서 이틀이 공중에 떠 있는 걸 못 참습니다. 내일 오후 5시에 이카 가는 버스를 예약해 두어 시간이 애매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숙소도 오전에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짐은 숙소에 맡긴다고 해도 방콕하고 쉴 수도 없구요. 생각하다가 내린 선택은 쿠스코 근교의 무지개산 투어를 하기로 합니다. 해발 5100미터에 비니쿤카라고도 하는 무지개 빛으로 영롱한 그 산이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면 먼저 버스 일정부터 변경해야지요. 버스표를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터미널에 내렸는데 창구에 사람이 없습니다. 옆에 창구에 물어보니 곧 온다고 하는 게 3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네요. 그 사이 기운을 차리려고 7솔하는 터미널 밥을 먹어보기도 하지만 악화되는 컨디션에 몸이 계속 가라앉습니다. 결국 다시 창구로 가서 내가 표를 산 버스회사 직원과 통화를 부탁해 8시로 버스 시간을 변경했습니다. 제대로 변경이 되었는지는 내일 가봐야 알겠지만요. 오후 3시가 넘어 숙소로 들어와 짐을 찾고 체크인을 하고는 바로 나와 내일 무지개산 투어를 예약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투어지요.

내일 일정을 폭풍처럼 정리하고 남은 시간은 쿠스코 박물과 2곳을 돌아보고 해질 무렵 쿠스코의 야경을 보러 전망대를 찾아 헉헉거리며 등산을 합니다.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심상치 않게 밀려들면서 일몰이 아름다웠는데 그 사이를 틈타 소나기가 내립니다.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야경을 보겠다고 홀로 언덕에 서 있는 그가 있네요. 무슨 고집인지... 그래도 덕분에 쿠스코의 석양과 야경의 맛을 보았네요. 참, 쿠스코에도 작지만 하얀 예수상이 있습니다. 가라앉는 몸으로 숙소에 퍼져 있었으면 오늘 내일 텅빈 날이었을 텐데 부지런을 떨어 아귀를 맞춥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쿠스코를 이렇게 만나갑니다. 이제 오늘 하루를 기쁘게 마감하고 내일을 맞이하네요. 남미 여행 50일째입니다. 숙소에서 듣는 쿠스코역 기차 기적 소리가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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