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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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8/6/16(토)
20151111_145755.jpg (177KB, DN:10)
20151111 떼제 공동체 넷째날  


● 20151111 떼제 넷째날

아, 내가 떼제에서 아침을 맞다니! 문득 다시 감동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내가 맞는 매 순간은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지요.
그렇게 하나님과 삶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물가에 뿌리가 이어진 식물처럼 더위와 가뭄에 염려가 없습니다.

수요일 아침 떼제 기도회 성찬식에 함께 하며 지리산 천왕봉 밑에서 벗들과 함께 했던 성찬식이 떠올라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그 때 건빵과 소주를 나누며 하늘과 바람과 살과 피를 나누어주신 그리스도 앞에서 각자 지리산을 만나며 경험한 그것을 살 것을 다짐했더랬습니다.
떼제에 머무는 이번 주는 매일 아침 빵과 잔을 받으며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삶을 맞이합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를 통해 생명을 받습니다.

○ 무엇을 하여야

율법을 잘 아는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예수는 그대가 잘 아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이지요.
강도만난 이에게 자기 것을 나누어준 사마리아 사람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따뜻한 긍휼함이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 영생은?

그렇다면 영생은 사랑을 품은 그가 그 순간 느끼는 행복과 나눔의 감격이었을 겁니다.
영생을 시간이 영원히 이어진다거나 오지 않은 내세의 무엇이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보여주시는 영생, 구원은 그런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영원입니다.
그런 삶을 만나는 것이지요.

오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율법학자는 그 해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지금 나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예수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생은 그렇게 해보면 얻어지는 영혼의 느낌이지요.
고통받는 이웃과 연대해 함께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입니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없고 구원받은 태도만이 있습니다.

○ 누가 이웃일까?

떼제는 다시 묻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오늘날로 하면 누구의 이야기이냐구요.
떼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당시 로제 수사에 의해 세워지면서 같은 물음을 이제껏 물어왔습니다.
처음에는 피난민들, 특히 유대인들을 숨겨주었고, 종전 후에는 독일군 포로들과 함께했습니다.
유럽이 동서로 나뉘었던 냉전 시대에도 목숨 걸고 동유럽을 찾아다녔고,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들의 이웃이 되고자 함이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수 천 명의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이, 꿈이 없는 젊은이들이 떼제에 와서는 기도를 하고 삶의 의미를 묻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는 이유, 떼제가 오랜 세월 그들의 이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떼제는 신한열 수사와 함께 전쟁과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북한과 남한을 방문하며 평화의 목소리를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 평화의 소리, 그것이 하늘의 소리라는 믿음이고 이웃이 되는 길,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겁하게 예수를 시험하는 사람은 알고도 행하지 않는 바로 나입니다.
강도만난 이웃은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 있지요.
내가 이런 저런 이유와 그럴듯한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 바로 그입니다.
제사장은 성스런 일에 바쁘고 레위인은 맡겨진 직무가 중요해서 그 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니 이웃이 되지 못하고 영생을 살지 못하는 것이라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세월호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강도만난 자를 외면하고서는 영생을 누릴 수가 없는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많습니다.
다 제사장이고 레위인입니다.
그러니 감동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고 남아 있는 것은 건물과 조직입니다.
어디 세월호에 대해서만 그렇겠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지요.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말입니다.

○ 여기서 행복은?

떼제는 또 행복(happiness)과 동정심(compassion)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묻고 있습니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이웃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기에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복은 많이 가진 것을 의미하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내가 많이 가졌다는 것은 그래서 적게 가진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니까요.

동정심이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동정, 공감, 그와 일치가 되는 것이지요.
강도만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 그 행복이 그를 자유케 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질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외식이 되겠지요.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고 압제받는 이웃과 연대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그 순간이 지복인 행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말이 안되는 싸움인줄 알지만 그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의 이웃입니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가서 그와 같이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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