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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13(목) 20170512_121205.jpg (113KB, DN:55)

20170512(#산티아고 11일)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지?!  ● 20170512(#산티아고 11일) 나헤라 - 산토 도밍고 :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지? 한결아! 공립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의 생활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나헤라는 작은 마을이 아닌데도 오후 3시가 되지 않아 알베르게가 꽉 찼습니다.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은 하는 수 없이 호텔로 가거나 노숙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여름 날씨의 변화가 심해 비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점이지요. 10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한 방에서 자고 먹고 2개의 샤워 부스에서 씻고... 그야말로 기본적인 생존을 합니다. 그래도 웃음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순례자니까요. 배우는 것은 순례자는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구요. 새벽 6시도 안되었는데 여기저기서 알람이 울립니다. 세계 각국의 알람 소리의 총집결이지요. 그리고 불이 켜지고 저절로 일어납니다. 미리 준비한 아침을 먹거나 그냥 짐을 챙겨 어둑한 길을 떠나지요. 길을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미숫가루를 한 컵 타서 먹고 길을 나섭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눈 앞 서쪽에 둥근 달이 지고 있고 등 뒤로는 여명이 밝아옵니다. 아침 향을 맡으며 6시 반부터 길을 나섰는데도 길에 순례자로 가득하네요. 다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여기는 왜 온 걸까요? 나헤라 공장 담벼락에 까미노의 시로 유명한 낙서가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오느라 놓쳤다지요. "먼지, 진흙, 태양과 비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그리고 천년이 넘은 세월 속에 수 천 명에 수 천 명을 곱한 순례자들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렀는가 어떤 신비한 힘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그것은 별들의 땅도, 대성당도, 나바라의 산악도 아니며 리오하의 와인도, 갈리시아의 해산물도, 까스틸리아의 넓은 들판도 아닐진데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렀는가 어떤 감춰진 힘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그것은 까미노에서 만나는 인연들도 시골의 풍습도 역사와 문화도 아니며 깔사다의 닭들도 가우디의 궁도 폰페라다의 성채도 아닐 것이다 스쳐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것과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보는 즐거움 그러나 더 심오한 곳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 나를 밀어주는 힘 나를 이끄는 힘을 나 자신도 설명할 길이 없다 오로지 그만 아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까미노는 모든 것과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보는 즐거움입니다. 지난 겨울 순례길은 홀로 하루 40Km를 걸었던 그 길을 어제 오늘 나누어 걸었네요. 홀로의 길에 있던 압력과는 또 다른 압력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겼던 길을 오늘은 아들의 호흡과 신음에 맞추어 걷습니다. 아들의 신음이 깊어지면 내 안타까움이 짙어지고 아들이 활기차지면 나도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시겠지요. 이제 200Km를 지났다고 하니 한결이는 어느새 사분의 일이냐고 합니다. 이제 한결이도 조금씩 길을 알아가는 길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곧 지도도 보지 않고 시간도 재지 않고 길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알아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오늘 새벽에 컨디션이 좋을 때 많이 걸었더니 오후 1시에 20Km를 걷고 목표했던 산토 도밍고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밤의 폭우로 길에 진흙이 가득해 발이 아파 등산화로 갈아 신지 않고 가벼운 런닝화로 걷는 한결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러면서 까미노를 만나겠지 합니다. 그렇게 어둑한 길을 한 시간 반 걸어 땀 빼고 처음 만나는 마을 바에 앉아 아들이 가져다주는 에스프레소 한잔의 향기와 맛이 기가 막힙니다. 오늘 산토 도밍고 가는 길은 내가 참 좋아하는 까미노의 백미입니다. 한결이에게 이 길을 보여줄 수 있다니요! 그런데 한결이는 길과 다투느라 씩씩거리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길을 마치고 한결이에게 오늘 길 예뻤지? 했더니 그렇답니다. 뭘 봤어? 하니 볼 것을 다 보았다구요.ㅎ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길이었습니다. 홀로 왔으면 그냥 앉아 하염없이 명상에 잠기고 싶은 길이지요. 여기서 노숙해도 좋을 지경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안개 가득하고 해가 저물고 있었지요. 참 고운 길입니다. 어느 순간 딱 멈추어 한결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지? 한결아!" 그랬더니 한결이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달랍니다. 사진 찍겠다구요.ㅋ 깔닥 고개를 숨차게 올라 쉼터에 앉아 숨을 고르며 한결이에게 묻습니다. 노아의 뜻이 뭔지 아냐구요. 노아의 뜻은 위로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수로 저주 받은 땅, 가인의 살인으로 황폐해진 정신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노아가 의인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를 통해 나를 만나지요. 그러니 내가 알든 모르든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나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고 위로와 희망이라는 것이 ‘노아와 방주’의 메시지이고 복음이고 하나님이 뜻입니다. 노아가 홍수에서 세상을 구원할 배를 만들었듯이 오늘 나도 홍수 같은 위기와 아픔과 고난에서 세상을 구원할 그것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에게 그것이 방주였다면 너에게는 무엇일까 한결이에게 물어줍니다. 한결이가 그런 방주를 잘 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사는 시대의 의인으로 출애굽의 주인공으로 말이지요. ‘죄악이 가득하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세상에 위로와 희망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러할 때 나는 노아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 그런 순례자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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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 목		이름	첨부	작성일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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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20170512(#산티아고 11일)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지?!		깊은산		2017/07/13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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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20170504(#산티아고 3일) 태초를 만나다.		깊은산		2017/07/05	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