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20170505(#산티아고 4일) 어제보다 나은 하루 (art

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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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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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산티아고 4일) 어제보다 나은 하루

● 20170505(#산티아고 4일) 쥐비리 - 빰쁠로냐 : 어제보다 나은 하루

오월 까미노의 알베르게가 만원이라니요.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 오후 5시 즈음에 쥐비리에 도착했는데도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겨울 까미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여름에 순례자로 가득해지면 순례길이 아니라 알베르게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다행히 쥐비리 안쪽에 사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었습니다.
쥐비리에는 순례자들보다 차를 타고 온 일반 관광객들이 더 많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베르게를 찾는다면 쥐비리보다는 다른 곳이 나을 성 싶습니다.
가능하다면요.

어두워 들어간 론세스바예스에 비하면 호텔과 같은 조건의 알베르게인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저녁도 순례자 메뉴로 든든히 먹었는데 말이지요.
생각해 보니 지난번 순례길에서도 쥐비리에서 잠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야지요.
대신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명상하고 기도하며 밤을 밝히다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고 깨었습니다.
그래도 하루를 넉넉하게 보낼 수 있으니 고맙기만 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걸어 인터넷이 안되는 빰쁠로냐 공립 알베르게에서 세탁기 순서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합니다.
사람이 없던 겨울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죠.
이제 빨래는 모았다 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야겠습니다.

저녁은 대도시 빰쁠로냐에서 장을 보아다가 잘 해먹었습니다.
냄비 밥에 누릉지까지 풀코스였지요.
한국인 부부 순례자를 만나 넉넉히 한 밥을 나누며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낮에 간간히 비가 뿌리더니 저녁 때가 되어 강풍이 불고 큰 비가 오네요.
내일 어쩌려나 모르겠습니다.
한결이 컨디션이 나아지기는 하는데 비가 오면 더 힘들어질까 걱정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갈 수 있는 대로 가는 거지요. 뭐.
내일 ‘용서의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벌써부터 주저합니다.
오늘 비가 오고 흐린 길을 걸으니 한결이는 딱 이 날씨가 좋다고 합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별들의 길을 따라 바람이 흐르는 거라고 하니 좀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자기가 바람인대요.ㅎ

이제 사흘을 걸었을 뿐인데 한결이는 첫날의 기억을 다 지우고 싶은가 봅니다.
어제 오늘은 한 일이 없는 것 같다고요.
고등학교 때 아트스쿨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한결이는 음악할 때 비유로 한다면 악기도 다률 줄 모르는데 악기를 손에 쥐고 연주회를 한 느낌이고 권투로 말한다면 빅 펀치를 맞고 KO 당하고 나서 시합을 시작한 느낌이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오늘도 초반에 잘 걷다가 빰쁠로냐에 도착하기 4Km여 전부터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고 발에 통증을 호소해 자주 쉬어주면서 피레네 산맥에서처럼 짐을 내가 지고 갈까 물었더니 강하게 고개를 젖습니다.
이제 다 왔는데 아버지 힘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요.
빰쁠로냐에 도착해 부끄럽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자기 나이 친구들은 군대에 갔는데 산티아고 길을 걷는 걸로 군대 다녀 온 걸로 하겠답니다.ㅎ
물론 다 가보아야 갈 수 있는 길이지만 말입니다.

비가 오니 피레네 산 기슭인 나바라 숲의 솔향이 그윽합니다.
아카시아 향도 한창이고 이름 모를 들꽃이 산길에 가득하네요.
쥐비리에서 빰쁠로냐까지 길은 두 갈래가 있습니다.
그 중 오른쪽 산길로 가는 전통 까미노가 매력적입니다.
산 위로 오르는 오르막 길이라 난감하지만 위에서 산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색다르네요.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대로 이름 붙여보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짐승들을 끌고 와 이름을 붙이라고 한 것은 아담에게 창조를 하게 한 것이지요
내게 찾아온 일들과 시간들을 내가 어떻게 맞이하고 이름을 붙이느냐입니다.
비오면 힘들겠다 귀찮겠다고 이름을 붙일지, 비가 오면 시원하고 재미있겠다고 이름을 붙일지 말입니다.
비가 오니 솔향이 좋습니다.
비가 오니 바람이 불어 좋습니다.

문득 한결이에게 다시 제일 처음 쓰여진 성경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한결이가 갸우뚱합니다.
왜 그런 걸 묻느냐는 거지요.
당연히 창세기가 순서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인들에게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종살이를 할까입니다.
왜 바로의 노예로 살아가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출애굽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때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창세기입니다.
출애굽의 교과서지요.
이런 사람이, 이런 세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은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그렇고, 선악과 이야기가 그렇고,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노아 홍수와 바벨탑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이제 한결이와 그 이야기를 하나 하나 해가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나를 창조하는 순례길이지요.
내 이야기, 인생의 천로역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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