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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앨범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2/24(일)
NigroPrayerArticle.pdf (128KB, DN:25)
기도 :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  

아주 긴 글입니다. 이번 8일 피정에서 발견한 예수회의 고전적인 기도에 대한 아티클이지요. 원문이 쉽지 않은 난문이라 번역하느라 고생했고, 또 덕분에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었답니다. 모두가 나의 고백과 경험은 아니지만 많은 도움과 도전을 받아 함께 나눕니다.^^

● 기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PRAYER: A PERSONAL RESPONSE TO GOD’S PRESENCE.) - Armond M. Nigro, S.J.(번역 : 오동성)

우리는 종교적 위기에 대해 많이 듣습니다. 권위와 복종, 공동체 생활, 개인의 정체성, 종교적 가난 등의 위기들이 있지요. 나는 이 모든 것에 기반 된 것이 믿음의 위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개인들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에 더 나은 응답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개선의 희망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평신도나 사제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한 가지, 가장 중요한 확신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 응답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 드려도 될까요?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보다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보다 중요하실까요?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중요하시지요.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우리의 그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어떤 말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 원하시고 소통하기 원하십니다.

기도가 너무 자기중심이 될 때, 심지어 그것이 고귀하고 거룩한 열망을 향하더라도 그 초점이 나, 나를, 나의, 우리가 될 때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며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지요. 성 요한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고 좋게 여기시더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거지요.

여기에 우리가 주의해야할 진정한 기도의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첫째로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이라면 기도의 시작은 그 임재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고, 당신은 내 안에 주신 생명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생명을 사랑하시고 내 주변에 모든 것들을 오게 하셨고 그 모든 것을 내 감각에 주셨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주신 재능과 열망을 사랑하십니다... 등등” 초점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나는 구별을 지으려고 합니다. 명상과 기도라는 용어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람들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선과 거룩과 경건에 대한 종교적인 명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은 내 생각에 한 부분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당신과 나의 소통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대화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그리스도의 삶과 그가 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기도를 위해 거룩하고 가치있고 선하고 도움을 줄만한 것이라도 그것은 본질적인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당신이 될 때, 내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고 당신은 내 안의 삶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입니다. 내가 나에게 하나님은 내 안의 삶을 사랑하신다고 하면 그것은 명상입니다. 내가 이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이십니까? 당신과 나의 관계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있을 때 나는 이런 응답을 참 기도라고 보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그가 하신 일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도움이 되는 선하고 거룩한 것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기도가 아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기도에 기본적인 첫 단계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 실체를 마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나누어주신 거룩한 생명과 호흡과 내 능력을 사랑하시고 “네.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네. 형제 예수님, 당신이 그러하십니다. 네. 성령님, 당신이 그러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기도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에 몇 분이라도 우리 앞에 이미 계신 하나님을 알아차린다면 그 경험은 기도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이것이 성숙한 기도이고 신비적인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소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지요.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물들에 나타나시고 당신의 임재로 사물들에 스며 드십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생명과 존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물들에게 고백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이기에 당신과 나의 관계가 그 임재를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도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 우리에게 무엇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적합하고 공손하고 분명하고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그것은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뿐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사랑스러운 생명과 존재와 당신의 본성을 내 안에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나의 형제여 감사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지요. 감사는 명확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고 흘러넘치게 됩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하고 관대하게도 내게 재정적인 후원을 주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모르거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 분의 사랑과 선에 응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원이 어디서 오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그 많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나에게만 그에게서 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래요 이 분이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 응답의 핵심을 알아차릴 수 있나요? 다른 이에게서 받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감사의 기본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어둡고 낯선 방문을 아무도 열지 않습니다. 누군가 있을 경우에만 대화가 시작되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의식하면 우리는 그 눈을 들여다봅니다. 우리는 마이크에 말한다면 라디오 청중이 우리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카메라를 들여다보면 TV 시청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테이프에 녹음을 하면 누군가 그것을 듣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든 개인적인 대면이 있어야 우리는 말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은 우리의 선하고 거룩한 욕구 안에서 기도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즉시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표현하는 시작을 하거나 슬픔과 회개를 시작하지요. 우리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무엇을 요청하거나 어떤 말을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를 말합니다! 나는 이것을 ‘쓰레기 더미’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기도한다면, 이는 분명히 누군가 듣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두운 방문을 열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이기에 먼저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와 돌봄과 신성한 임재를 인식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단계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면 세 번째 단계는 사랑하는 응답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주어진 사랑에 이렇게 말하며 반응하지요,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때 이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형제되신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당신을 또한 사랑합니다.”라는 것이 최고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할 때 이는 뭔가 완전하지 않은 기도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화창한 날씨를 구하거나 병이 낫기를 구하거나, 하나님께 요청하는 세계 평화와 정의 같은 뭔가 더 거룩하고 중요한 것을 구할 때, 이는 예수께서 칭찬하셨고 좋게 여기셨던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와서 무언가를 구하는 어린아이는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는 단지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내 필요를 채울 수 있으니 사탕 하나 주실래요?”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께 요청할 때 우리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임에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각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보다 깊이 알아갑니다. 예수께서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 얼굴을 향하고 아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셨지 않나요?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이 얼마 많은 청원인지 알아차려보세요. 우리 주님은 기도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청원기도가 바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집니다.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입니다. 창조주, 지키시는 분, 거룩하신 분, 용서하시는 분, 우주의 자비로운 주, 모든 것을 예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는 당신께 완전히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부탁을 드릴 때도 물론 “당신은 다 이루셨습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공갈협박이나 하나님의 임재에 굽신거려서 하나님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이 당신은 이루어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내일 화창한 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다시 처음 요지로 돌아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원하시지요. 비극은 우리 중 소수만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유는 기도에 대한 잘못된 교육과 가르침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와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대화하려 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적어서입니다. 우리가 이에 대해 확실하지 않기에 대부분 시간을 우리말만 해버리고 명상을 합니다. 혹은 영적 독서나 유익하다고 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대화하시는 침묵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로 우리 자신을 비우거나 포기하는 것에 마땅치 않아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종류의 기도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언제나 효과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와 개인적으로 대화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조금 더 신비적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조금도 위험하거나 극도로 정적이거나 길에서 벗어나거나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범하고 정상적인 매일의 건강한 신비를 원하십니다. 신비주의자라고 함은 하나님의 임재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로 의식을 채우시도록 여지를 둔 사람들을 말하지요. 우리 기도의 생활이 성숙함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더 깨어있고 민감해지고 조율되고 유순해지고 반응하기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기도는 그 임재에 개인적인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응답하거나 사회적인 반응을 하는 등의 능력과 자질이 두 방향으로 발전하거나 주어집니다. 하나는 우리가 선행이라고 부르는 습성들입니다. 이것들은 역동적인 능력이지요. 그것들은 우리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우리의 활동으로 완벽해집니다. 그것들은 활동을 통해 얻어집니다. 때때로 이들의 시작은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연습을 통해 강화되고 완벽해지지요.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선행을 쉽게 해줍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는 우리의 능력을 활성화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은 다만 송신기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신기도 가지고 있지요. 둘 다 중요합니다. 수신기의 능력은 우리 기도 생활에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의 선물이라고 불리워집니다. 그들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대화하시는 현존으로 깨어 있게 하고 받아들이고 조율되고 민감하게 하고 유순해지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 길로 더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의 성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신성한 임재는 개인적이고 사랑스럽고 신중하며 특별하게 우리 안에 스며 드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기를 더욱 더 원하시지요. 모든 좋은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그리고 교회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말씀을 통해 우리와 대화하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그의 성력 안에서 우리는 아들과 딸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듣고 받아들이도록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지는 않으시지요.

이제 나는 실천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증하건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자유롭게 더 강력하게 대화하실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하루에 15분에서 30분가량 하나님과 홀로 믿음 가운데 있어 보십시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것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각자와 대화하시기 원하시고 우리 각자가 홀로 있는 시간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5 P’s” 기도를 기억하시나요?

(1) 본문(Passage) :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5절~10절 정도 짧은 본문을 성경에서 고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절대로 기도 시간에 빼놓지 마십시오. 기도를 시작하기 전 몇 분을 할애하세요. 본문을 듣고 맛보고 향을 맡아 봅니다. 좋아하는 시편이나 비유, 혹은 기적의 이야기, 아니면 주님의 설교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당신의 분위기와 필요에 어울려야 합니다. 그리고 책갈피를 끼워두세요. 기도를 마치기 전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2) 장소(Place) : 하나님과 당신이 홀로 있을 개인적인 공간을 찾으세요. 이것도 중요합니다. 때때로 성당의 제대 앞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예배당에 있다면 당신이 기지개를 펴고 싶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한숨을 쉬거나, 불평을 하거나, 울거나,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홀로 있을 때만 가능하지요. 이렇게 편안한 곳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억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고 싶을 때 제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 홀로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서 다른 사람의 주의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하세요.

(3) 자세(Posture) : 개인적인 기도를 시작할 때, 당신 마음이 평화로울 때까지 조금 기다립니다. 당신은 천사나 몸을 떠난 영혼, 혹은 지력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남자와 여자로 기도하지요. 남자와 여자는 몸을 가지고 있고 몸의 자세는 기도에 있어 중요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에 마음이 열리고 더 받아들이기 쉽게 느낀다면 그렇게 하세요. 신비가 성 이냐시오는 기도할 때 누워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추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가장 잘 통하고 응답할 수 있는 자세를 찾을 때까지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세요. 이는 여러 날이 걸릴 수도 한 번에 다 해볼 수도 있습니다. 에를 들면, 침대에 눕거나 편안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받치거나, 의자를 팔걸이에 기대거나,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딱한 의자에 앉아서 손바닥을 위로 혹은 아래로 두거나, 머리 받침을 두어 턱을 자유롭게 하거나, 머리를 기대고 서 있거나, 책상에 앉아서 팔을 그 위에 두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지지대에 두거나 밖으로 벋치거나 등등... 다른 자세는 각각의 다른 분위기와 필요에 따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 :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세요. 하나님의 임재가 어떻게 당신에게 오는지 스스로 평화롭게 돌아봅니다. 예를 들면, 당신 앞에 있는 책상이나 옷들 가운데 하나를 느끼며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네, 당신은 내 안에 느낌을 주시고 무늬를 짜 넣으십니다. 당신은 보게 하시고 색을 주십니다. 당신은 듣게 하시고 소리를 주십니다. 당신은 생명을 주시고 내 안에 계십니다. 내 안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스러운 미덕으로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분명이 이루어지니 조급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 부분을 당신의 기도 가운데 서두르지 마세요. 어쩌면 시간의 전부를 할애하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순간 하나님의 특별한 소식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적인 깊은 교감과 함께 찾아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때, 계속 이어지게 하세요. 이 경험이 마치 물이 몸을 떠받치듯이 당신을 붙잡고 이끌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머물러 봅니다. 움직이거나 조급해하거나 바꾸거나 쓸데없는 많은 말들로 과도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로 기도를 쓰레기 더미로 만듭니다. 아마도 간단한 반복으로 “주님, 나의 하나님,” 혹은 “아바, 아버지”라고 하면 돕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을 계속 되새겨 보세요.

(5) 본문(Passage) : 당신이 선택한 본문을 다시 읽을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사랑과 찬양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려고 할 때,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무미건조하더라도 이를 실패의 징조로 판단하거나 위축되지 마세요. 대신에 그 건조함이 성경 안에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도록 당신을 초청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할 때 성경을 가까이 두세요. 하나님의 임재에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롭게 응답하려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대화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기회를 드립니다. 들으세요. 왜냐하면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주신 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바꾸지 않으시고 지금 살아계십니다. 이 길로 하나님께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경 본문을 주의를 기울여서 아주 천천히 속삭이거나 큰 소리로 읽습니다. 절과 절 사이에 잠시 멈춥니다. 그래서 그 반향과 말씀의 의미가 마른 땅에 단비가 적시듯이 당신에게로 스며들도록 합니다. 당신은 아마도 단어나 문장을 반복하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선택한 본문을 마쳤다면 다시 돌아가서 천천히 되풀이 합니다.

왜 말씀을 속삭이거나 큰 소리로 읽어야 할까요?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 눈과 귀와 목소리로 우리의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침묵으로 어떤 것을 읽을 때에 내 상상력과 주의력이 멀리 가버리는 동안 내 눈은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이런 방식으로 성경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경험입니다. 무슨 적용법을 만들거나 깊은 의미나 결과와 암시 등을 연구하거나 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기도를 쓰레기 더미로 만듭니다. 아빠의 무릎에 파고 들어 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열린 마음에 만족하는 겁니다.

시간이 마무리 될 때에 당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당신의 남은 하루를 위해 당신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떠나가는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깨달으십시오.

이것들이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시도록 하는 나의 제안들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미지근하고 성심 없이 기도했더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07살어도 말입니다. 당신 자신을 맛보고 바라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이런 기회를 드리고 여기에 신심 있게 남아 있는다면 단기간 내에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신비로움을 만들어 내실 거라고 내가 약속드립니다. 아주 일반적이고 건강하고 보통으로 매일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신다는 이러한 기도가 신비주의입니다.

아마도 신비주의에 대해 명확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비주의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유지되는 사람과 하나님의 의식적인 일치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만들거나 얻거나 책임질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이것을 시작하거나 유지할 수 없지요. 때로는 우리가 기도에 그리 많이 힘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아주 실제적으로 찾아와 위로로 채우시기도 합니다. 아주 멋진 경험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전날보다 더 노력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가슴에 재만 쌓이지요. 우리가 그것에 아무리 굶주려도 기도에는 아무 맛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수천 마일이나 멀어지신 것 같아요.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강제할 수도 만들거나 얻을 수도, 그럴만할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신비적인 경험, 이는 완전한 선물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많은 단어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위로, 평화, 기쁨, 큰 믿음의 충족, 소망, 사랑의 존재 등등... 이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대화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갈망하신다면 왜 조금 더 자주 이런 일을 하시지 않으시는 걸까요?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은 거짓말이나 잘못된 보상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대화하실 수 있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우리가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와 교제하지 않으십니다. 선결조건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 깊이 중심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우리가 만들 수도, 훔칠 수도, 얻을 수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완전히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받을 준비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준비할 수 있고 그것이 왔을 때 깊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왔을 때, 우리는 겸허하게, “왜 저입니까? 저는 이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비적인 경험입니다. 이것은 항상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고 단순하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내적 확신으로 옵니다. 이는 정말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신비는 성육신입니다. 인성과 신성이 하나가 되는, 신성에 의해 시작된, 사람이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다른 신비주의는 성육신의 실제에 첨가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눔이 있지요.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와 나누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종류의 사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은혜는 당신을 깊이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직자 사무실이나 미사의 제단 앞에서 보다 육체노동이나 고난 가운데 하루 종일 진정한 묵상에 들어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개인적인 기도는 본질적으로 이와 같습니다. 개인적인 기도에서 나의 노력은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다고 해도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치 없는 사람의 노력을 넣어서 그만큼의 신비적인 체험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개인적인 기도를 위해 믿음으로 시간을 내고, 이것은 다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변화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예전과 공동체 기도를 더 낫게 할 것이구요. 이는 우리의 노동과 사회 참여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 경험하는 우리의 일은 하나님과 기도 안에서 일치되고자 하는 욕구를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홀로 보내는 10분, 15분, 30분의 개인적인 기도를 할 때 더 잘하게 도와줍니다. 이 둘은 서로 먹여주고 자라게 하지요.

우리 모두는 이런 방법으로 기도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하길 원하시고 우리를 기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응답한다면 우리 각자는 독특한 방법으로 기도에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특별합니다. 우리의 반응은 유일하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 역시 유일하고 특별하십니다.

⚆ 가족이나 그룹 기도를 위한 제안

1. 저녁식사 후, 접시를 치우기 전에 성경 본문을 하나 택합니다.: 막4:35~40, 한 사람이 낭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낭독자가 먼저 참석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도록 초청하고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되새겨 줍니다.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 그리고 짧은 기도로 시작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당신의 말씀을 잘 듣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3. 그리고 낭독자는 본문을 아주 천천히, 분명하게, 잘 끊어서 소리내어 읽습니다. 각 문장이 듣는 이들에게 스며들도록 말입니다.

4. 낭독 후에 각자 돌아가면서 개인적으로 주어진 말씀을 나눕니다. “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나는 이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다가왔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혹은 이런 의미였습니다...” 참여자들은 아주 짧게, 개인적으로(‘우리’가 아니라 ‘나’...), 정직하고, 단순하게, 설교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토론이 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것이 기도 분위기를 망칠 겁니다. 평화롭고, 겸손하고, 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뭐라고 말씀하셨고 어떤 의미였는지 개인적으로 나눕니다.

낭독과 나눔 사이에 침묵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침묵의 순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공명되고 깊이 들어오는 귀중하고 가치있는 순간입니다. 긴장을 푸세요. 침묵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세요.

5. 처음 나눔을 마친 후, 낭독자는 같은 구절을 천천히 다시 읽습니다. 더 풍부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이 일어나는 시간이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눈 본문을 통해 각자가 더 깊이 있게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6. 두 번째 나눔을 합니다. 보통 두 번째 낭독을 따라 처음보다 더 풍부해집니다.

7. 같은 구절을 다시 천천히 세 번째로 읽습니다. 마지막입니다.

8. 세 번째 낭독 후, 지원자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말씀하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들 안에서 당신의 임재를 더 많이 느끼게 해주세요.”

9. 자발적인 기도 후에, 좋아하는 찬송을 부르면서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이는 30분 안에 마쳐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아주 실제적이 되지요. 특별히 기도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크게 기도하면 다른 사람은 단순히 듣지 않습니다. 영적인 일체감으로 그 기도는 자기의 것이 됩니다.

이러한 성경본문을 가지고 하는 나눔과 기도는 다른 모든 그룹에서 뛰어난 역할을 합니다. 클럽이나, 교실, 연대, 소그룹 등등... 10명 이내에 좋은 효과가 있구요. 사람들이 많을 때는 작은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라틴어로 “Collatio(콜라세오)”라고 합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뜻이지요.

⚆ 말씀과 함께하는 기도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기본적인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오래전부터 우리 각자에게 관심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드러내시지요.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 교회를 통해,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고,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우리 주변에 보이는 피조물을 통해, 우리 생활 가운데 물리적인 형태로(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나오고, 이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또 다른 모습)
- 우리 삶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 하나님의 임재의 실재적인 모습인 성경을 통해서. 이것이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함께 가장 관심을 가지는 소통의 형식입니다.

그는 우리를 듣도록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에 우리의 응답은 말씀하신 것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기본자세이지요.

어떻게 들을까요?
기도하기 직전에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보통, 이것은 당신이 서두르지 않는 무엇이지요. 잠시 동안 스스로 고요해지고 기장을 풀어보세요. 기도할 수 있는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 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의 말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다 들리지 않게 하려 할 것입니다.

기도는 침묵과 고독 안에서 가장 잘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좋아하는 구절을 5~10절을 고릅니다. 책갈피를 꽂아 두고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당신의 응답이 방해받지 않을 홀로 있는 조용한 곳을 찾습니다. 또 내적으로 고요해 지십시오. 예수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려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 같은 소음과 활동과 긴장의 세대에게는 우리의 돌봄, 약속, 그리고 주변 환경의 소음과 흥분을 잊어버리는 것이 항상 쉽거나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산만함을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이런 점에서 불안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하나님은 시끄럽고 혼란한 날들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대로 기도를 준비하는데 당신 주변에 소리를 듣고 긴장을 푸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이 있는 그대로 실재하십니다.

당신의 감각을 의식하시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사랑하고 방황하고 갈망하는 살아 있는 경험을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이기적이지 않으신 사랑스러운 임재를 의식합니다.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네. 당신은 생명을 사랑하시고 그 느낌을 내게 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개인적인 삶을 내게 나누시는 것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선물로 오셨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사십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당신 안에서 사람처럼 나타나십니다. 성경으로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당신 안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을 들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천천히 주의깊게 읽기 시작하십시오.

너무 많이 읽으려고 서둘지 마십시오.
- 만일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면 거기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함께한 이들과 나누십시오. 예를 들면 눈먼 사람이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자세와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지요.
- 몇 단어와 문장이 단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 단어들을 맛보십시오. 당신의 가슴에서 뒤집어도 보십시오.
- 당신은 어쩌면 이야기하고 싶거나 시편을 인용허가나 성경의 다른 기도를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무언가 당신을 두드릴 때
-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길에 서고 있음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그렇게 되신거지요.
- 새로운 길: 그리스도에 의해 고침을 받는다는 의미를 알아차립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 성령 안에서 들어 올려지는 것을 느낍니다.
- 뭔가 좋은 일을 하도록 옮겨집니다.
- 평화롭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다만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당신이 멈추어야할 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말씀으로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실 때입니다. 앞서 가려고 서둘지 마세요. 이 경험에 의해서 더 이상 당신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도 용기를 잃지 마세요.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미건조하고 공허함을 느끼게 하십니다. 위로를 경험하거나 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하나님의 부재 안에서 우리와 아주 가깝게 계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자기 비움 안에 우리를 위해 계시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한계와 함께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기도할 수 없게 보여도 말이지요. 겸손하게 듣는 태도는 사랑의 징조입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도지요.

여기서 바울의 말씀을 기억합니다.(롬8:26~27)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러 오십니다. 무슨 말로 기도할지 알지 못할 때 성령은 스스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간청함으로 표현해 주십니다.”

기도 가운데 긴장을 푸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을 기억하십시오.(사55:10~11)
“비와 눈은 하늘에서부터 와서 땅을 적시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싹을 내고 자라게 해 농부를 위해 씨앗을 준비하고 먹을 빵을 마련하게 한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말씀도 나의 뜻을 이루지 않고, 맡겨진 일을 다하지 않고는 나에게 공허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과 주변에 임재하고 계심을 의식하면서 기도 시간을 보내세요.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이 관심이 있거나 고마움과 기쁨과 슬픔과 열망 등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5P’s” 요약

- 성경 본문. 하나를 선택해 책갈피하고 준비합니다.
- 장소.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을 곳에 홀로 있습니다.
- 자세. 긴장을 풀고 평화롭게 있습니다. 영과 함께 몸이 균형을 이룹니다.
-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고 응답하세요.
- 성경 본문. 아주 천천히 소리내어 읽고 주의깊고 평화롭게 듣습니다.

소리내어 읽거나 호흡에 맞추어 리듬에 맞추어 속삭입니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잠시 멈추거나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결론과 결과와 깊은 의미와 교훈과 암시 등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단지 아버지의 무릎으로 기어올라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아이와 같이 불평 없이 기꺼이 만족하세요. 마치면서 하나님이 오늘 남은 시간도 계속해서 당신과 함께하실 것을 되새겨 봅니다.

(원문 PDF를 구했습니다. 첨부 화일을 클릭해 주세요^^)

http://sanmul.net/technote/main.cgi/NigroPrayerArticle.pdf?down_num=1550969651&board=art_album&command=down_load&d=&filename=NigroPrayerArticl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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